천양희의 시 <밥> -사는 게 힘들수록 밥부터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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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별일이 다 있었는데, 막상 집에 돌아오니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회사에서는 웃는 얼굴로 버텼고, 지하철에서는 휴대폰만 들여다봤다.

집에 와서 신발을 벗는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한숨 하나가 툭 떨어진다.

“아, 오늘도 참 길었다.”

​

그럴 때 냉장고 문을 열어본다. 먹을 게 별로 없다.

그래도 밥솥을 열어보니 다행히 밥이 조금 남아 있다. 반찬은 김치 하나.

그런데 이상하게 그 밥 한 숟가락을 떠먹으니 조금은 살 것 같다.

천양희의 시 〈밥〉을 떠올려본다.

외로워서 많이 먹고, 권태로워서 많이 자고, 슬퍼서 많이 우는 사람에게

시인은 거창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궁지에 몰렸다면 그것마저 밥처럼 씹으라고 말한다.

“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

우리는 힘들면 자꾸 삶을 해결하려고 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분석하고,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인생이 어디 그렇게 계산대로만 되는가.

마음이 아픈 날에는 철학책을 펼쳐도 한 문장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명언을 읽어도 “좋은 말씀인데 지금은 좀…”

​

그럴 땐 일단 밥부터 먹는 것도 방법이다.

밥은 참 이상한 것이다. 특별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그런데 밥을 먹고 나면 조금 전까지 세상을 다 포기할 것 같던 사람이 내일 출근 시간을 확인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밥이 혼자 먹을 때와 함께 먹을 때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밥 먹었어?”

이 짧은 말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들어 있다.

“괜찮아?”

“오늘 힘들었지?”

“그래도 나는 네 편이야.”

​

최근 연구에서도 여러 나라의 대규모 자료를 분석한 결과,

다른 사람과 식사를 나누는 빈도가 높은 사람일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고 부정적인 감정은 낮은 경향이 나타났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아주 평범한 행동이 인간의 행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완벽한 해결책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사람보다,

말없이 옆에 앉아 “밥이나 먹자”고 말해주는 사람이 더 고마운 순간이 있다.

​

오십 줄을 넘긴 내 삶이 그렇다.

자식 걱정에 속이 타고, 부모님 건강에 마음이 무겁고,

직장에서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불안하다.

친구를 만나도 예전처럼 속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한다.

​

그래서 더더욱 밥 한 끼가 중요하다.

거창한 화해도 필요 없다.

가족과 마주 앉아 된장찌개 하나 놓고 “오늘 힘들었지?” 한마디 건네는 것.

그것만으로도 관계의 얼어붙은 부분이 조금 녹을 수 있다.

​

결국 삶은 누구도 대신 소화해줄 수 없다.

하지만 혼자 씹어 삼키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내 옆에 앉아 함께 밥을 먹어준다면,

같은 인생이라도 조금 덜 쓰고 조금 덜 외롭게 삼킬 수 있다.

그러니 오늘 마음이 궁지에 몰렸다면 너무 빨리 인생의 답을 찾으려 하지 말자.

밥부터 먹자.

그리고 가능하다면 혼자 먹지 말자.

​그리고 오늘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물어보자.

“밥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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