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일상생활
아내가 아프자 집안일이 보였다-당연했던 일상 뒤에 숨어 있던 수고, 고마움은 말보다 행동으로 전해진다
아침부터 집안이 어수선했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쌓여 있고, 세탁기 안에는 어제 돌린 빨래가 그대로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반찬은 있는데 무엇을 꺼내 먹어야 할지 막막했다. 평소 같으면 별일 없이 지나갔을 아침이다. 그런데 아내가 몸살로 누워 있자 집안의 모든 일이 갑자기 문제로 떠올랐다. 회사에서는 복잡한 업무도 척척 처리하면서 집에서는 양말 한 짝의 행방조차…
생일 케이크보다 오래 남은 말-비싼 선물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나를 기억해 주는 일이다
아내의 생일을 사흘 앞두고 휴대전화에 알림이 떴다. ‘소중한 사람의 생일을 잊지 마세요.’ 참 친절한 세상이다. 이제는 가족의 생일까지 기계가 챙겨준다. 문제는 휴대전화가 기억해 주는 만큼 내 마음도 기억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급하게 선물을 검색했다. 인기 상품, 추천 선물, 연령별 베스트까지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몇 번의 클릭 끝에 결제를 마쳤다. 배송 날짜도…
“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에, 내 걱정도 숨어 있었다 -사랑하는 마음과 대신 결정할 권리를 구별하는 연습
아들이 진로를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유를 다 듣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아들은 알아봤다고 했다. 나는 더 알아보라고 했다. 자료까지 보여주자 현실은 자료와 다르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대답이 무엇이든 반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미 결론을 정해놓았던 것이다. 마지막에는 익숙한 문장을 꺼냈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아내의 꿈에, 나는 계산기를 먼저 꺼냈다-걱정을 말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이유를 듣는 사랑
아내가 작은 카페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예쁜 가게 사진을 찾아보려던 것이 아니었다. 계산기를 켰다. 보증금, 월세, 재료비, 하루에 팔아야 할 커피 잔 수가 머릿속에 줄을 섰다. “요즘 카페가 얼마나 많은데. 잘 안되면 어떻게 하려고?” 틀린 걱정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넉넉한 여윳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내가…
아내의 꿈에, 나는 계산기를 먼저 꺼냈다-걱정을 말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이유를 듣는 사랑
아내가 작은 카페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예쁜 가게 사진을 찾아보려던 것이 아니었다. 계산기를 켰다. 보증금, 월세, 재료비, 하루에 팔아야 할 커피 잔 수가 머릿속에 줄을 섰다. “요즘 카페가 얼마나 많은데. 잘 안되면 어떻게 하려고?” 틀린 걱정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넉넉한 여윳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내가…
노래는 옛날 노래인데, 눈물은 오늘 것이다- 흘러간 가요 한 곡에 다시 만나는 사람과 마음
설거지를 하다가 손을 멈췄다. 휴대전화에서 오래된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주만 들어도 아는 노래였다. 흥얼거리며 그릇을 닦다가 어느 대목에서 갑자기 목이 메었다. 눈물이 날 이유는 없었다. 오늘 누가 나를 서운하게 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슬픈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아내가 부엌에 들어오다 물었다. “왜 그래?” “아니, 그냥 노래가 좀…….” 쉰…
우리 집 식탁에는 빈 의자가 늘었다-일주일에 한 끼, 서로의 하루를 받아주는 시간
저녁을 차리고 숟가락을 놓다가 하나를 다시 치웠다. 큰아이는 늦는다고 했고, 둘째는 밖에서 먹었다고 했다. 막내도 약속이 있었다. 아내와 식사 시간까지 엇갈린 그날, 식탁에는 나와 반찬만 남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밥 한 끼 먹이는 일이 전쟁이었다. 앉아라, 흘리지 마라, 한 입만 더 먹어라. 그때는 조용히 먹고 싶었는데, 막상 조용해지니 밥이…
배우자의 코골이가 자장가로 들리기까지-서로의 흠결 너머로, 함께 살아온 시간을 바라보는 일
아내가 코를 골기 시작하면 나는 천장을 바라본다. 낮에는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던 사람이 불을 끄면 혼자 긴 연설을 시작한다. “여보, 조금만 돌아누워 봐.” 잠시 고요해진다. 이제 잘 수 있겠다 싶으면 다시 시작이다. 부부의 침대에도 소음 분쟁 조정위원회가 필요한 밤이다. 다음 날 아침, 억울한 얼굴로 한마디 한다. “당신 코골이 때문에…
커피는 달았는데, 돌아오는 길은 썼다-남을 이야기한 자리에서, 내 마음을 돌아보는 일
커피를 마시다가 자리에 없는 동료 이야기가 나왔다. “그 사람은 꼭 자기 편한 일만 하더라.”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얼마 전 서운했던 일까지 보태니 이야기가 제법 풍성해졌다. 누군가 웃었고, 나도 웃었다. 공통의 불만이 생기자 우리 사이가 갑자기 가까워진 것 같았다. 커피값만 내고 소속감까지 얻은 셈이었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니 입안이 썼다.…
집 앞 벤치에서 퇴근을 미루는 사람-가장이라는 이름 뒤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다
퇴근하고 집 앞 벤치에 앉았다. 현관까지는 삼 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그런데도 휴대전화를 꺼내 날씨를 확인하고, 이미 읽은 뉴스를 다시 읽었다. 오늘 서울의 날씨보다 내 마음의 날씨가 궁금했지만 그런 것은 앱에 나오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가족이 싫어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회사에서 쓰던 괜찮은 척을 집에서도 이어갈 기운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