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의 『태백산맥』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적으로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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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뉴스를 보다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도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에게 화가 나 있을까.

보수와 진보, 세대와 세대, 남자와 여자, 지역과 지역.

말 한마디 잘못하면 금세 ‘저쪽 사람’이 된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운다.

우리에게는 원래부터 이렇게 많은 적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다 문득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떠올렸다.

『태백산맥』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뼈아픈 분단의 비극적 기원과 민중의 수난사를

가장 방대하고 입체적으로 복원해 낸 작품이다.

이 거대한 서사의 시공간적 배경은 1948년 여순사건부터

1953년 한국전쟁 휴전에 이르는 해방공간이다.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났다는 환희도 잠시,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반도는 미·소 냉전 체제의 그늘 아래

이념의 대리전이라는 참혹한 용광로 속으로 휘말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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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데올로기의 실체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흙내 나는 농민들이

왜 좌우의 싸움에 휩쓸려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는지를 아프게 추적한다.

지주와 소작인 간의 오랜 계급 갈등, 해방 후에도 권력의 승자로 군림하며

민중을 억압하는 친일파의 부조리 속에서 인간의 존엄은 무참히 짓밟혔다.

이 작품은 외세의 개입과 이념적 대립이

어떻게 오늘의 가슴 시린 분단 체제를 낳았는지를 증명하는 뼈아픈 역사적 고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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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작품이 이룩한 진짜 위대함은

흑백논리로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심판하는 데 있지 않다.

지식인 출신의 사회주의자 염상진, 냉철한 우익 경찰 염상구,

이념의 폭력 속에서 고뇌하는 손승호 등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신념과 생존의 논리에 따라 맹렬히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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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어느 한쪽을 악마화하지 않고,

인간이 이념의 포로가 될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냉철하게 응시한다.

그리고 작가의 시선이 궁극적으로 맞닿는 정점은

바로 상처받은 영혼들을 향한 ‘해원(解冤)’에 있다.

여기서 해원은 억울함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상처를 기억하되 그 상처가 또 다른 증오의 씨앗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누가 옳았는지만 따지다 보면 역사는 판결문이 되지만,

누가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들여다보면 역사는 비로소 사람의 얼굴을 갖는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것인지 모른다.

상대방의 말에 동의하라는 뜻이 아니다.

잘못을 잘못이 아니라고 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누군가를 곧바로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는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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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의 무대였던 벌교를 돌아보는 문학기행에서 한 연구자는

작품의 현장을 찾는 일을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문학기행이 끝난 뒤에는 우리의 일상이 시작된다고 했다.

그 말이 오래 남는다.

결국 《태백산맥》을 읽는 일은 옛날 사람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다.

오늘 내 마음속에 세워진 작은 휴전선을 발견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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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순간부터 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단정했는가.

나는 언제부터 내 편의 아픔만 아픔이라고 생각했는가.

분단은 지도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생긴다.

그러니 평화는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한 번 들어주는 것,

‘네가 틀렸어’ 대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라고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우리 마음속 태백산맥부터 조금씩 낮춰보자.

산을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고개 하나를 넘고, 또 하나를 넘다 보면

언젠가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길이 생길 것이다.

​

《태백산맥》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은 결국 이것인지 모른다.

​역사의 상처를 안고도 우리는 다시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

나는 가능하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편 가르기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보려 한다.

그게 어쩌면 오래된 분단의 상처를 넘어,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배워야 할 가장 소중한 공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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