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수선소』프롤로그 — 책을 펼쳐 놓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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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저절로 넘어갔다.

곽 노인은 창문을 조금 닫고 작업대 앞으로 돌아왔다. 펼쳐놓은 책은 오래된 요리책이었다.

국과 찌개를 만드는 법이 실린 면마다 손때가 묻어 있었고, 몇 군데에는 갈색 얼룩이 남아 있었다.

책등에서 떨어진 속장은 어제부터 깨끗한 종이 사이에 놓아두었다.

책을 맡긴 여자는 가방에서 그것을 꺼내며 말했다.

“엄마가 보던 건데요. 버리기는 좀 그래서…….”

곽 노인이 책을 받자 여자는 손을 바로 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가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에요.”

여자는 웃었지만 노인은 책이 충분히 작업대에 올라올 때까지 아래를 받치고 있었다.

놓아도 된다는 듯 손을 조금 빼자, 그제야 여자의 손가락이 표지에서 떨어졌다.

책 안에는 연필로 적은 글씨가 있었다.

간장 양을 줄이라는 표시와 설탕 대신 무언가를 넣으라는 메모였다.

어떤 글씨는 눌러 썼고, 어떤 글씨는 급하게 흘려 썼다. 같은 사람이 쓴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곽 노인은 그런 글씨를 읽으려고 책을 오래 붙들지는 않았다.

다만 풀을 바르기 전에 위치를 확인했다. 손이 닿거나 종이가 겹쳐지는 바람에 가려지지 않도록.

가게 밖에서 셔터 올라가는 소리가 났다.

맞은편 가게는 몇 달째 비어 있었다.

오늘은 안을 보러 온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문 앞에 서서 천장을 가리키던 남자가 전화기를 귀에 댔다.

곽 노인은 잠깐 보다가 다시 책으로 눈을 내렸다.

작업대에는 붓과 실타래, 접시에 덜어놓은 풀이 있었다.

끝이 둥근 도구는 손이 닿는 오른쪽에 놓여 있었다.

수십 년째 쓰는 물건들이었지만, 찾지 못해 책 밑을 들추는 날도 있었다.

요리책의 떨어진 속장을 맞추는데 손목이 뻐근했다.

노인은 도구를 내려놓고 손을 폈다 쥐었다.

선반 아래에는 어제 들어온 책 상자 두 개가 그대로 있었다.

한때는 작업대 옆 의자에도 책을 쌓아두었다.

앉을 사람이 없으니 빈자리를 아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의자에서 책을 옮기고 바닥의 상자를 들어 올리는 일이 자꾸 뒤로 밀렸다.

미루다 보면 통로가 좁아졌고, 손님은 문을 열고도 어디에 서야 할지 몰라 했다.

곽 노인은 요리책 위에 깨끗한 종이를 덮었다.

찬장에서 공책을 꺼내 빈 면을 찢었다. 자를 대지 않고 찢어서 한쪽이 조금 비뚤었다.

그는 종이를 돌려놓고 굵은 펜으로 썼다.

오후에 책 정리 도와주실 분.

전화번호까지 적고 나니 아래쪽이 많이 남았다.

시간을 써넣을까 하다가 펜 뚜껑을 닫았다.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 말하면 됐다.

유리문에 종이를 붙일 때 작은 종이 울렸다.

문을 열었다 닫을 때마다 나는 소리였지만, 안쪽에서 붙잡고 서 있으니 유난히 가까웠다.

노인은 테이프 끝을 손톱으로 눌러 붙이고 밖으로 나왔다.

간판 아래에 서서 종이를 보았다.

글씨는 읽을 만했다.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 때문에 전화번호가 잘 보이지 않아 몸을 한 걸음 옆으로 옮겼다.

골목으로 들어온 햇빛이 문턱에서 끊겼다.

가게 안은 바깥보다 어두웠고, 오래된 책등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곽 노인은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종이 울렸다.

의자에 놓인 책들을 선반으로 옮겼다.

마지막 한 권을 들자 좌판에 네모난 먼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걸레를 가져와 닦고, 의자를 작업대 옆에 두었다.

자리를 마련하고 보니 다리 하나가 약간 흔들렸다.

노인은 몸을 숙여 확인한 뒤 얇은 종이를 접어 받쳤다.

손바닥으로 눌러보니 이번에는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올지는 알 수 없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오후에 시간이 남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정리하는 일이라면 할 수 있다고 들어왔다가 상자를 보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었다.

곽 노인은 의자를 조금 안쪽으로 밀고 앉았다.

덮어두었던 종이를 걷자 요리책의 메모가 다시 드러났다.

그는 붓에 풀을 묻히고 접시 가장자리에서 조금 덜어냈다.

떨어진 면을 붙이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붙인 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골목 끝에서 발소리가 들렸다가 멀어졌다.

노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책장이 어긋나지 않도록 한 손으로 받치고, 다른 손으로 얇은 종이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유리문 안쪽의 종이는 오후 내내 햇빛을 받았다.

그 종이 앞에 한 남자가 멈춰 서는 것은 며칠 뒤의 일이었다.

(1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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