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오랜만에 친구 한 명을 만났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예전보다 주름이 조금 늘었고, 말끝에는 전보다 긴 한숨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친구가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의 친구가 그 안에 그대로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함께 웃었던 젊은 날도, 서로에게 말하지 못했던 고민도,
그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견뎌낸 시간도 모두 함께 앉아 있는 듯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은 그의 시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을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의 일생이 통째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사람을 너무 쉽게 만난다.
회사에서 “안녕하세요” 하고 지나치고, 식당에서 마주 앉고, 카톡을 보낸다.
그러면서 상대방을 이미 다 아는 사람처럼 판단하기도 한다.
“저 사람은 원래 저래.”
참 편리한 문장이다.
그리고 참 위험한 문장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는 것은 그 사람의 오늘 하루 중 아주 작은 한 장면일 뿐인데도 말이다.
화가 난 사람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 있다.
말수가 적은 사람에게는 오래된 상처가 있을 수도 있다.
유난히 까칠한 사람에게는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외로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현종은 ‘부서지기 쉬운 마음’이라고 했다.
이미 한 번쯤 부서졌을지도 모르는 마음이다.
그래서 타인의 마음을 대하는 태도도 바람처럼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말한다.
바람은 무엇인가를 움켜쥐지 않는다. 그저 살며시 스쳐 지나간다.
나이가 들수록 이 말이 더 어렵고도 고맙게 들린다.
젊을 때는 사람을 만나면 내가 무슨 말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건 네가 잘못한 거야.”
“내가 해봐서 아는데 말이야.”
“그럴 때는 이렇게 해야지.”
지금 생각하면 참 열심히도 참견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알게 된다. 사람에게 늘 답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충고보다 “그랬구나” 한마디가 더 필요하다.
해결책보다 옆에 조용히 앉아주는 사람이 더 고마울 때도 있다.
어쩌면 환대란 거창한 일이 아닐 것이다.
따뜻한 밥 한 끼를 내어주는 것일 수도 있고, 늦게 들어온 가족에게 이유부터 묻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친구의 이야기를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 평소와 다르게 말이 없을 때 “무슨 일 있어?”라고 다그치기보다 “오늘 좀 힘들었나 보네” 하고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일 수도 있다.
결국 환대는 상대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 인생을 품고 내 앞에 와 있다는 사실을 존중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방문객이다.
나 역시 가족에게, 친구에게, 누군가에게 잠시 찾아온 사람이다.
나도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어딘가에는 쉽게 건드리면 아픈 마음 하나쯤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을 만날 때 조금만 천천히 판단해도 좋겠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니라,
수십 년의 시간을 등에 지고 찾아온 한 사람의 일생이라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정현종의 《방문객》을 읽고 나면 사람을 대하는 속도가 조금 느려진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오늘 내 앞에 찾아온 사람에게 나는 어떤 바람이었을까.
상처 난 마음을 더 흔드는 바람이었을까,
아니면 잠시라도 마음의 갈피를 살며시 넘겨주는 바람이었을까.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