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이 베이스 기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빠, 방학 때 공연을 좀 해보고 싶어.”
내 머릿속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자격증은 언제 딸 것인지, 공부할 시간은 있는지,
음악으로 먹고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물었다.
아이는 방학 계획을 이야기했는데 나는 장래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냥 해보고 싶다는 거야.”
그 말에도 나는 쉽게 멈추지 못했다.
“남들 하는 건 좀 해놓고 해야지.”
말을 끝내자 이상하게 귀가 뜨거웠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장이었다.
젊은 날 내가 가장 싫어했던 어른들의 말이었다.
1995년 패닉의 〈왼손잡이〉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 노래가 참 좋았다.
세상이 정해놓은 방식과 달라도 괜찮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X세대라는 이름이 조금 으쓱했던 시절이었다.
어른들은 우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고,
우리는 이해할 생각도 없이 판단부터 한다고 투덜거렸다.
나는 오른손잡이였지만 그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왼손잡이 편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식탁에 앉은 아이에게는
남들과 같은 방향을 요구하고 있었다.
청춘의 반항은 추억으로 보관하면서, 자녀의 계획은 생활지도로 처리하는 중이었다.
물론 걱정에는 이유가 있다.
살아보니 월세도 무섭고, 실패한 뒤 다시 일어나는 일도 쉽지 않다.
아이가 덜 다치기를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다.
문제는 그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올 때 자주 명령이 된다는 것이다.
위험을 알려주려다가 선택을 대신하고, 길을 밝혀주려다가 다른 길의 입구를 막는다.
〈왼손잡이〉의 힘은 익숙한 기준을 낯설게 보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편하게 쓰는 손이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손까지 고쳐야 하는가.
내가 살아온 방식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고 해서,
그것이 다음 세대에게도 유일한 길인가.
나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한다고 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설명하기 어려운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취업이나 자격증 이야기는 익숙하다.
작은 공연장에서 연주하며 무엇을 얻는지는 잘 모른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기보다,
쓸모없다고 정리하는 편이 아버지의 체면을 지키기 쉬웠던 것이다.
그날 밤 아들이 듣는 음악을 잠깐 함께 들었다.
내가 듣기에는 비슷한 소리가 이어졌지만,
아이는 베이스가 들어오는 부분을 짚어주었다.
같은 노래 안에서도 내가 놓친 것이 있었다.
아이의 계획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하려면 뭐부터 준비해야 해?”
아이는 장소와 연습 일정, 함께할 친구들을 이야기했다.
생각보다 구체적이었다.
나는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물었고,
아이는 학업에 지장이 없도록 시간을 나누겠다고 했다.
걱정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의 계획을 듣고 나서 하는 걱정은 처음과 조금 달랐다.
며칠 뒤 아들이 연습 영상을 보내왔다.
소리는 거칠었고 화면도 흔들렸다. 나는 몇 번 돌려보다가 짧게 답했다.
“네가 말한 베이스 소리, 이제 좀 들린다.”
아들이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이번에는 내가 가르친 것이 없었다.
대신 아이에게 배운 소리 하나가 내 귀에 남았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