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벤치에서 퇴근을 미루는 사람-가장이라는 이름 뒤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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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집 앞 벤치에 앉았다.

현관까지는 삼 분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그런데도 휴대전화를 꺼내 날씨를 확인하고, 이미 읽은 뉴스를 다시 읽었다.

오늘 서울의 날씨보다 내 마음의 날씨가 궁금했지만 그런 것은 앱에 나오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가족이 싫어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회사에서 쓰던 괜찮은 척을 집에서도 이어갈 기운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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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어디야?”

“거의 다 왔어.”

거짓말은 아니었다. 몸은 거의 다 왔는데 마음이 조금 늦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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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하루에는 이름이 많다.

회사에서는 부장이고, 집에서는 남편이며 아버지이고, 어머니 앞에서는 아들이다.

맡은 역할은 분명한데 정작 그냥 나로 앉아 있을 자리는 어디인지 모르겠는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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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는 예전만큼 찾는 사람이 없는 듯하고,

아이들은 어느새 자기들끼리 고민을 나눈다.

가족이 저마다 잘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조금 서운하다.

독립적으로 키우겠다고 해놓고 독립적인 표정만 봐도 섭섭하니,

나도 참 다루기 까다로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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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헛헛함을 쉽게 말하지 못했다.

돈 걱정과 건강 걱정도 많은 집에 내 외로움까지 올려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피곤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피곤함은 쉬면 되는 문제처럼 들리지만,

외롭다는 말은 누군가를 탓하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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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 말수가 줄었다.

아무도 묻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면서, 누가 물으면 별일 없다고 대답했다.

마음의 문을 잠가놓고 왜 들어오지 않느냐고 기다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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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은 연민을 함께 고통받고 함께 머무는 마음으로 설명한다.

그 생각을 따라가니 내가 바라는 것도 조금 보였다.

누가 내 인생을 해결해주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하루가 무거웠다고 말할 때, 그 말을 얼른 치우지 않을 사람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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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집에 들어가 아내 옆에 앉았다.

“요즘 좀 이상해.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는 기분이야.”

아내가 잠시 나를 보았다.

나는 괜한 말을 했나 싶어 웃으려 했지만 기다렸다.

“나는 당신이 혼자 쉬고 싶어서 말이 없는 줄 알았어.”

내가 고립이라고 느낀 시간을 아내는 배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오래 알았지만 오늘의 마음까지 저절로 아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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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이야기를 꺼냈다.

하루 종일 사람을 상대하고 돌아오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나는 내가 짐을 혼자 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도 자기 몫의 무게를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각자 버티느라 서로의 손이 비어 있는지 묻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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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특별한 해답은 없었다.

나는 저녁 설거지를 하고 아내는 차를 끓였다.

우리는 식탁에 조금 더 앉아 있었다.

다음에는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함께 한 바퀴 걷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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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은 약속만으로 모든 우울이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무기력과 가라앉은 마음이 오래 이어져 생활이 버거워진다면,

가족에게 말하는 일과 함께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길도 찾아볼 생각이다.

버티는 데 익숙하다고 언제나 혼자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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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다시 집 앞 벤치에 앉았다.

이번에는 아내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다.

“도착했어. 잠깐 같이 걸을래?”

잠시 후 아내가 내려왔다.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나는 회사 이야기를 했고 아내는 오늘 만난 사람 이야기를 했다.

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날은 서로 무엇을 들고 있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삼 분이 그전보다 덜 멀게 느껴지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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