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랍을 정리하다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젊은 내가 누군가와 나란히 서 있었다.
배는 들어가 있고 머리숱은 풍성했다.
사진을 보자마자 마음이 흔들린 이유에 대해서는 잠시 판단을 미루기로 했다.
아내가 옆에서 물었다.
“누구야?”
“옛날 친구.”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옛날’이라는 두 글자에 제법 많은 이야기를 숨겼다.
아내는 웃으며 사진 속 내 옷차림을 지적했다.
저런 셔츠를 어디서 구했느냐는 것이다.
덕분에 추억은 청문회 대신 패션 평가로 무사히 넘어갔다.
그날 저녁, 우연히 부활의 〈네버 엔딩 스토리〉를 들었다.
2002년 발표된 노래이다.
예전에는 높은 음을 따라 부르느라 목에만 힘을 주었는데,
이제는 멜로디가 지나가는 자리마다 잊고 지낸 시간이 떠올랐다.
약속 장소에 한 시간 먼저 도착했던 날이었다.
대단한 사건은 없었다.
함께 먹은 음식과 별것 아닌 대화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런 사소한 것들이 오래 남았다.
기억은 중요했던 일만 보관하는 창고가 아닌 모양이다.
문득 그 사람이 그리운 것인지, 그때의 내가 그리운 것인지 궁금해졌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를 꺼내려고 며칠을 고민하던 사람,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세상이 조금 더 밝아 보이던 사람이 나에게도 있었다.
철학책에서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나뉘지만,
노래를 듣는 마음에서는 그 경계가 흐려진다.
지금의 내가 오래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추억은 지나간 날을 그대로 재생하는 영상이 아니라,
오늘의 마음으로 다시 읽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기억의 결말도 조금씩 달라진다.
한때는 헤어진 이유만 따지고 싶었다.
누가 더 서운하게 했는지,
왜 조금 더 기다리지 못했는지 마음속에서 재판을 열었다.
판사와 원고를 모두 맡았으니 판결은 늘 내게 유리했다.
그래도 편해지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 사람에게도 내가 모르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의 나는 사랑이 크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마음이 깊어도 서툴 수 있고, 진심이어도 서로를 아프게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니 오래된 기억에서 조금씩 가시가 빠졌다.
끝난 사랑을 아름답게 간직한다는 것은
다시 시작할 기회를 찾는 일이 아닐 것이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억지로 불러내지 않으면서,
그 시절 내게 건네진 다정함을 고맙게 받아들이는 일이다.
모든 이별이 아름다워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내 기억 속 사람을 평생 피고석에 앉혀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노래가 끝났을 때 아내가 주방에서 불렀다.
“차 마실래?”
나는 사진을 서랍에 넣고 컵 두 개를 꺼냈다.
아내는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나는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들었다.
오래전에는 약속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렸고,
지금은 이 사람과 마실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움이 남아 있다고 오늘의 사랑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지나간 시간을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도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
첫사랑은 끝났지만,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던 마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그 마음으로 오늘은 아내의 컵을 먼저 데워놓았다.
내 삶의 이야기는 아직 이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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