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말하는 어른의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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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요즘 좀 힘들어”라고 하면 내 머릿속에서는 긴급 대책회의가 열린다.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마련하고, 앞으로의 계획까지 세운다.

아이는 한마디 했는데 나는 벌써 인생 컨설팅 업체를 차린 셈이다.

물론 고객 만족도는 별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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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빠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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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이 나오면 아이의 표정이 달라진다.

아, 오늘도 상담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얼굴이다.

정작 내 인생은 아직도 수정 중인데,

남의 인생에는 왜 이렇게 최종 결재를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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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보면서 조금 찔렸다.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은 과거를 숨긴 채 명문고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그가 만난 학생 한지우는 수학 때문에 주눅이 들어 있다.

남들은 척척 푸는데 자기만 멈춰 있는 기분이다.

문제집을 덮고 싶은 마음 뒤에는, 자신까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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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성은 지우에게 정답을 얻는 요령만 가르치지 않는다.

문제를 이해하고, 막힌 곳을 살피고, 다시 풀어가는 시간을 함께한다.

감독이 주목한 것도 낙담한 아이를 다그치기보다

끝까지 듣고 함께 해결법을 찾는 어른의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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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아이가 틀린 답을 썼을 때, 왜 그렇게 풀었는지 물어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빨간 펜은 늘 준비되어 있었지만, 이야기를 들을 의자는 자주 비워두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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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수학은 졸업하는 줄 알았다.

웬걸, 통장에는 뺄셈이 계속되고, 가족의 서운함은 곱셈으로 불어나며, 내 마음 하나 나누는 일도 쉽지 않다.

이쯤 되면 인생에도 풀이집이 필요하다.

그런데 서점 어디에도 우리 집 사정에 딱 맞는 해설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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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우리는 남의 결과를 너무 빨리 채점한다.

시험에 떨어지면 노력 부족, 승진에서 밀리면 능력 부족이다.

그 사람이 버틴 밤과 삼킨 한숨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

내 사정은 복잡한 서술형인데, 남의 사정은 자꾸 객관식으로 줄여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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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답 하나가 틀렸다고 사람 전체가 오답은 아니다.

지금 막혔다는 사실과 앞으로도 못 풀 것이라는 판결은 다르다.

그 사이에서 “어디까지 해봤어?” 하고 물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내려놓았던 연필을 다시 잡을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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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성 역시 모든 답을 가진 어른은 아니다.

지우와 가까워지는 동안 자신의 상처도 마주한다.

나는 그 점이 좋다.

아이를 가르치는 줄 알았는데 어른도 배우고 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오래 살았다는 뜻이지, 마음까지 졸업했다는 뜻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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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내가 주저앉았을 때도 그랬다.

옳은 말씀은 많이 들었지만, 오래 기억나는 것은 내 밥그릇에 반찬을 얹어주던 손이다.

더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을 때, 물컵을 내 쪽으로 밀어주던 사람이다.

내일도 상황은 어렵겠지만, 오늘 밥은 먹고 가라는 그 마음 덕분에 다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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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음에 아이가 힘들다고 하면, 대책회의부터 잠깐 미뤄보려 한다.

“무슨 일이 있었어?” 하고 묻고, 휴대폰도 내려놓을 생각이다.

물론 듣다가 내 경험담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것이다.

그때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면 된다. 말 한마디 참는 데 드는 비용치고는 저렴하다.

그러고는 밥을 차리든, 같이 산책을 하든, 아이가 말을 이어갈 자리를 남겨두고 싶다.

해결해주지 못했다는 조급함도 조금 견뎌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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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밥 먹고, 내일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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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을 건네는 어른이고 싶다.

공책에 지운 자국이 많아도, 아직 펼쳐놓고 있는 마음을 알아보는 사람이다.

나 역시 옆자리에 앉아 내 문제를 풀면서, 가끔은 서로의 지우개를 빌려 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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