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관에서 구두를 벗는데 한쪽 발이 잘 빠지지 않았다.
허리를 굽혀 뒤꿈치를 잡아당기다가 한숨이 나왔다.
하루 종일 사람들 눈치를 보았는데, 퇴근해서는 구두 눈치까지 보는 기분이었다.
“오늘 어땠어?”
아내가 물었다.
“뭐, 그냥 그렇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설명하려니 피곤했다.
오전에는 자료를 고쳤고, 오후에는 다시 고쳤다.
마지막에는 처음 것이 낫겠다는 말을 들었다.
열심히 제자리로 돌아온 하루였다.
출발점에 도착한 것도 실적으로 쳐주면 좋으련만, 그런 항목은 없었다.
씻고 나와 소파에 앉았다.
휴대전화 속 사람들은 운동을 끝내고, 책을 읽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양말도 아직 세탁 바구니에 넣지 못했다.
남들은 하루를 알차게 사는데 나만 시간을 흘려보낸 것 같았다.
위로가 필요했고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에서 ‘위로의 노래’를 찾고 클릭했다.
몇 곡이 지나 익숙한 곡이 들렸다.
제목이 뭐였지?
〈수고했어, 오늘도〉
오늘은 그냥 그 곡명이 마음에 걸렸다.
수고했다고? 오늘 내가 무엇을 했다고?
우리는 칭찬을 받으려면 내놓을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배워왔다.
성적이 올랐거나, 계약을 따냈거나, 적어도 어제보다 나아졌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위로할 때조차 증빙 자료부터 찾는다.
오늘 하루의 가치를 확인하려고 마음속 결재판을 여는 것이다.
하지만 ‘잘했다’와 ‘수고했다’는 조금 다른 말이다.
잘했다는 말이 결과를 바라본다면,
수고했다는 말은 그 일을 하느라 애쓴 사람을 바라본다.
완성하지 못했어도 붙들고 있었고,
해결하지 못했어도 도망치지 않았던 시간을 알아보는 말이다.
나는 그날 처리하지 못한 일만 세고 있었다.
불편한 전화를 받으면서도 목소리를 가다듬은 일,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자료를 연 일,
지친 몸을 데리고 집까지 돌아온 일은 계산에서 빠져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그 하루를 살아낸 사람까지 하찮게 여긴 셈이다.
인간을 쓸모로만 바라보면 쉬는 시간에도 불안해진다.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나는 어떤 가치가 있는지 자꾸 묻게 된다.
그러나 사람은 생산량으로 설명이 끝나는 존재가 아니다.
지치고 흔들리는 날에도 밥을 먹고, 누군가와 안부를 나누며 살아갈 자격이 있다.
그렇다고 수고했다는 말이 모든 잘못을 지워주는 것은 아니다.
고칠 일은 고치고, 미룬 일은 다시 해야 한다.
다만 내일의 책임을 오늘 밤까지 끌고 와 자신을 몰아세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내가 주방에서 그릇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오늘 하루가 별것 없었다고 말하면서,
아내의 하루도 제대로 묻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방으로 가서 마른 그릇을 찬장에 넣었다.
“당신도 오늘 수고했어.”
아내는 잠깐 나를 보더니 웃었다.
“당신도.”
짧은 말이었다.
회사에서 해결되지 않은 일은 그대로였고, 내일도 출근해야 했다.
그런데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이 조금 풀렸다.
누구에게 설명하지 못한 하루가 그 한마디 안에 잠시 놓였다.
잠들기 전에는 나에게도 같은 말을 해보았다.
어색했지만, 익숙해질 때까지 해볼 생각이다.
잘한 일이 없는 날에도 수고한 사람은 있다.
오늘은 그 사람을 나무라는 일을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