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좋은 문장이 꽤 많다.
마음을 비워라, 지금을 살아라.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지인의 잘나가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작아진다.
내 스마트폰은 거의 현자인데, 주인은 아직 수습생이다.
나이가 들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쉰을 넘기면 마음에도 자동 업데이트가 되는 줄 알았는데, 질투와 서운함은 구형 프로그램 그대로이다.
남에게 해줄 말은 많은데 내 마음 하나 달래기가 이렇게 어렵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그 민망한 틈을 들여다보게 하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부처와 이름이 같지만 다른 인물이다.
그는 훌륭한 가르침을 만나고도 자신의 길을 떠난다. 고행을 하고, 사랑을 배우고, 돈과 욕망에 빠지기도 한다.
마침내 강가에서 뱃사공 바주데바와 지내며 삶을 새롭게 듣기 시작한다.
곧장 강가로 갔으면 고생을 덜 했을 것 같지만, 인생에는 그런 지름길 안내가 없다.
남의 방황은 줄거리 몇 줄로 정리해도, 내 방황은 매일의 밥값과 잠 못 드는 밤을 치러야 한다.
작품에서 싯다르타는 지식과 지혜를 구별한다.
지식은 전할 수 있지만 지혜는 말로 그대로 건네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좋은 말을 무시하라는 뜻으로 읽지 않는다.
들은 말이 내 삶에서 어떤 뜻인지 알아가는 시간까지 대신 받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로 읽는다.
‘가족을 소중히 하라’는 말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바쁜 하루 끝에 배우자의 한숨을 듣고도 휴대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순간,
나는 내가 아는 만큼 살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지혜는 밑줄 친 문장보다 그때의 손끝에 가까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게 가장 아프게 남는 것은 싯다르타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그는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들은 그의 삶을 받아들이지 않고 떠난다.
붙잡고 싶은 마음에 괴로워하던 싯다르타는 자신도 젊은 날 아버지를 떠났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제야 뒤에 남겨졌던 아버지의 외로움이 자신의 아픔과 겹쳐진다.
자유를 찾아 떠날 때는 내 인생이었고, 자식이 떠나려 할 때는 왜 그렇게 집안일이 되는가.
나 역시 아이에게 자기 길을 찾으라고 말하면서, 가능하면 내가 그린 지도 안에서 찾아주기를 바란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걱정도 깊어지는데, 걱정이 늘 좋은 길잡이는 아닌 모양이다.
이 장면을 읽으면 젊은 날의 나를 조금 늦게 이해하게 된다.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았던 내가 꼭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 말을 듣지 않는 아이에게도 내가 모르는 절실함이 있을 수 있다.
내 경험을 건넬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아이의 경험을 미리 끝낼 수는 없는 것이다.
바주데바는 말을 많이 하는 스승이 아니다.
그는 싯다르타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강물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그 곁이 부럽다.
설명을 잘 못해도 기다려주는 사람 앞에서는, 나도 몰랐던 속마음이 조금씩 말을 얻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좋은 문장을 저장할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저장 버튼을 누른 뒤, 가까운 사람의 얼굴도 한번 보려 한다.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묻고, 반박할 말을 준비하지 않은 채 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잘될지는 모르겠다.
듣다가 또 내 인생 강의가 시작될 수도 있다. 그때는 멈추고 다시 들으면 된다.
쉰이 넘어서도 배우는 사람이라 조금 민망하지만, 아직 배울 수 있어 다행인 나이다.
오늘은 명언 하나를 더 아는 대신, 가족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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