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에 글 하나를 올리려다 한 시간을 보냈다.
제목을 넣고 사진을 넣었는데, 이번에는 사진이 엉뚱한 곳에 붙었다.
지웠더니 멀쩡하던 문단까지 사라졌다.
회사에서는 제법 능숙한 사람이었는데, 화면 앞에서는 초보였다.
사람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던 손가락이 저장 버튼 하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거 왜 이러는지 좀 봐줄래?”
아이는 몇 번 누르더니 해결했다.
나는 원래 알고 있었는데 잠깐 헷갈린 척하고 싶었다.
어른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 마우스 옆에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우연히 YB의 〈나는 나비〉를 들었다.
밝은 멜로디와 희망을 향한 이야기가 오래 사랑받아온 노래이다.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갈 이들의 응원가처럼 들었다.
그런데 쉰을 넘겨 다시 들으니, 아직 무엇이 될지 몰라 망설이는 내 이야기 같았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성숙한, 어른스러운 사람이 될 줄 알았다.
경험도 쌓이고 마음도 단단해져,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현실은 조금 달랐다.
익숙한 일을 오래 했다는 것과 새로운 일을 잘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그런데 나는 자꾸 과거의 능숙함으로 오늘의 서툼을 혼냈다.
이 정도도 못 하느냐고, 이 나이에 무엇을 새로 배우겠느냐고 말이다.
처음 하는 일인데도 처음인 나를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래 속 변화의 여정을 생각하면 번데기라는 시간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겉으로 움직임이 적다고 아무 일도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모습을, 성과가 보이지 않는 배움의 시간에 겹쳐 읽었다.
글을 고치고, 사용법을 묻고, 어제 실패했던 일을 다시 해보는 하루이다.
남에게 보여줄 결과는 적어도
내 안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길을 조금씩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다리기만 하면 저절로 날개가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생활은 계속되고, 배워야 할 것도 있다.
하고 싶은 일과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을 살펴야 한다.
다만 한 번의 실수로 가능성 전체를 접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실패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앞에서 잘 모르는 사람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검색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한참 붙들었고,
물으면 금방 끝날 일을 체면 때문에 늦췄다.
아들에게 말했다.
“다음에는 내가 해볼 테니까 옆에서 알려줘.”
아이는 천천히 설명했다. 나는 메모했다.
아이에게 배운다는 사실이 민망하면서도 고마웠다.
자식에게 늘 배워야 한다고 말해온 사람이니, 이제는 내 말부터 지켜볼 차례였다.
중년의 성장은 다시 젊어지는 일이 아닐 것이다.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배움을 끝내지 않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들이고,
내 방식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일이다.
그날 글을 올렸다. 사진은 조금 컸고 제목도 다시 손봐야 했다.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해보았다.
저녁에 아내에게 보여주자 글을 읽고 웃었다.
조회 수부터 확인하려던 나도 잠시 화면에서 눈을 뗐다.
내가 쓴 이야기가 가까운 사람에게 닿았다는 것이 좋았다.
나는 아직 높이 날아오른 사람이 아니다.
내일도 버튼을 못 찾고, 글 한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출 수 있다.
그래도 모르는 것을 묻고 다시 해볼 생각이다.
오늘 배운 방법을 잊지 않으려고 노트북 옆에 메모를 붙였다.
날개를 배우는 나에게는, 지금 그 작은 종이 한 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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