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옛날 노래인데, 눈물은 오늘 것이다- 흘러간 가요 한 곡에 다시 만나는 사람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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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하다가 손을 멈췄다.

휴대전화에서 오래된 가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주만 들어도 아는 노래였다.

흥얼거리며 그릇을 닦다가 어느 대목에서 갑자기 목이 메었다.

눈물이 날 이유는 없었다.

오늘 누가 나를 서운하게 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슬픈 일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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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부엌에 들어오다 물었다.

“왜 그래?”

“아니, 그냥 노래가 좀…….”

쉰 넘은 남자가 고무장갑을 끼고 울먹이는 장면이다.

감성은 충만한데 자세는 영 품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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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노래만 듣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노래를 듣던 시절의 나를 만나고 있었다.

이어폰 한쪽을 나눠 끼던 친구, 늦은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별말 없이 밥을 먹던 아버지의 뒷모습까지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다.

자주 보던 얼굴을 언젠가는 사진으로만 만나게 되고,

지겹던 잔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지는 날도 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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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몇 분이면 끝나는데

그 안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한참 동안 마음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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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기억을 연구한 페트르 야나타의 연구에서는

익숙한 음악이 개인의 삶에 관한 기억과 감정을 함께 불러오는 모습을 확인했다.

내게는 그 설명이 이렇게 들린다.

우리는 노래를 기억하면서, 그 노래 곁에 있던 삶도 함께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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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시가 고요 속에서 되돌아본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그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설거지 앞에서 흘린 눈물도 조금 이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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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먹고살고 다음 날을 준비하느라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마음이,

오래된 노래를 만나 뒤늦게 제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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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젊음만이 아니었다.

그 시절 내 곁에 있던 사람들, 사랑을 받으면서도 사랑인 줄 몰랐던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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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아들이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노래냐고 물었더니 제목을 알려주었다.

처음 듣는 곡이었다.

예전 같으면 “옛날 노래가 가사는 더 좋았어”라는 말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이번에는 물었다.

“어떤 부분이 좋아?”

아들은 가사 한 대목의 뜻을 설명했다.

누군가 떠난 뒤에도 잊지 못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가수도 리듬도 달랐지만 그 마음은 낯설지 않았다.

내 오래된 노래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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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가 바뀌면 사랑을 표현하는 말은 달라진다.

그래도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고,

헤어진 뒤에야 잘해주지 못한 일을 떠올리는 마음은 서로 알아볼 수 있다.

우리는 각자의 노래를 들으며 비슷한 곳에서 목이 메는 사람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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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런 마음이 오가는 자리가 좋다.

누군가의 눈물을 주책이라며 웃어넘기지 않고,

그 노래에 어떤 사람이 들어 있는지 들어주는 자리 말이다.

오래전 사람이 남긴 다정함이 오늘의 나를 움직이고,

내가 건넨 다정함이 훗날 아이의 노래 속에 남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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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아내에게 부엌에서 떠올렸던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가 밥을 드시던 모습이 생각났다고.

아내는 잠자코 듣다가 자기 아버지도 식사할 때 말이 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잠시 두 아버지의 식탁을 함께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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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옛 노래를 듣다 눈물이 나면 조금은 그냥 두려 한다.

아직 그리워할 사람이 있고,

오래된 사랑을 알아보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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