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 노인은 젖은 책장 사이에 얇은 종이를 끼웠다. 해수가 풀 접시를 보자 그가 말했다.
“지금 붙이면 안 돼.”
해수는 찬장에서 수건을 꺼내 소년에게 내밀었다.
소년은 그제야 배낭을 벗었다. 윗부분을 누를 때마다 수건에 물기가 배었다.
“책은 왜 가져가려고 했어?”
“내가 알던 책이라서요.”
“읽었던 책?”
“비슷한 거. 표지만 봤으니까.”
해수는 낡은 동화책을 보았다. 돈을 만들려고 골랐을 책 같지는 않았다.
“네가 읽었던 건 어떤 내용인데.”
“토끼가 집 찾는 거요.”
곽 노인이 뒤쪽을 살폈다.
“이건 집에 돌아가는 거야.”
“그러니까요.”
“다른 책일 수도 있지.”
소년은 노인의 손을 지켜보다 낮게 물었다.
“마지막에 불 켜져 있는 거 맞죠.”
노인이 책을 돌렸다. 소년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맞아.”
“그냥 확인하려고 했어요.”
확인하려는 사람이 왜 책을 옷 안에 넣었는가. 해수는 그 말을 믿기 어려웠지만,
그림에서 떨어지지 않는 소년의 눈을 보니 거짓말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보고 싶다고 했으면 됐잖아.”
“안 된다고 할 거면서.”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책 사는 데냐고 물었잖아요.”
해수는 문 앞에서 했던 대답을 떠올렸다.
고치는 곳이라고 말한 뒤에는 소년의 신발과 바닥에 떨어지는 물만 보았다.
곽 노인이 책을 당겼다.
“이건 여기 둬야 해. 맡긴 사람이 있어.”
소년은 대답하지 않고 수건을 접었다.
*빗소리가 가벼워지자 소년이 일어났다. 상자 위의 돈을 거두고 배낭을 걸쳤다.
“가도 돼요?”
“오늘 잘 데는 있어?”
곽 노인의 질문에 대답이 빠르게 돌아왔다.
“있어요.”
“밥은?”
“먹었어요. 친구 만나야 돼요.”
배낭 옆 주머니에 칫솔 손잡이가 보였다.
해수의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소년은 배낭을 등 뒤로 돌렸다.
곽 노인이 공책을 밀었다.
“책 때문에 연락할 수 있게 번호 적고 가.”
“전화 끊겼어요.”
“그럼 이름.”
“왜요.”
“다시 오면 알아보게.”
소년은 허리를 숙여 글씨를 썼다. 해수의 이름 아래에 세 글자가 생겼다.
윤지후.
전화번호 칸은 비어 있었다.
“내일도 열어요?”
“열어.”
“그 책도 있어요?”
“있어. 아직 안 말랐을 거야.”
지후는 펜을 놓고 나갔다. 가는 비가 남아 있었지만 후드를 다시 쓰지 않았다.
해수는 젖은 어깨가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바라보았다.
다섯 시에도 책은 작업대에 펼쳐져 있었다. 해수는 곽 노인에게 다가갔다.
“제가 잡는 바람에 더 찢어진 것 같습니다.”
“봤어.”
“손님한테 말씀드려야겠네요.”
“해야지.”
“수선비가 더 나오면 제가…….”
“얼마 나올지도 모르는데.”
돈을 내겠다고 하면 자신의 몫을 다한 것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책은 여전히 찢어져 있었고 맡긴 사람은 아무것도 몰랐다.
“제가 잡아당긴 것도 말씀해주세요.”
곽 노인은 의뢰서의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했다.
“오늘 가게에 온 애가 책을 가져가려다가, 붙잡는 중에 한 장이 찢어졌어. 우리 일하는 사람이 잡아당겼고.”
수화기 너머에서 길게 말하는 소리가 났다. 노인은 끊지 않고 들었다.
“응. 미안해. 내일 상태 보고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자 해수가 물었다.
“제가 지금 뭘 하면 됩니까?”
“오늘은 건드리지 마.”
해수는 작업대에서 손을 내렸다.

집에서는 아내가 국을 데우고 있었다. 신발을 벗으려 허리를 숙이자 등 아래가 뻐근했다.
“거기 사장님은 어떤 분이야?”
“말이 좀 없어.”
“당신은 말 많이 했겠네.”
해수는 식탁 의자를 당겼다.
“처음부터 좀 아는 척했지.”
국이 앞에 놓여도 바로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오늘 책 한 권을 찢었어.”
“당신이?”
“애가 가져가려는 걸 잡다가.”
아이의 잘못을 먼저 설명하면 아내도 이해할 것 같았다. 해수는 국 위의 김을 보았다.
“일단 말려야 한대.”
“책을?”
“응. 내가 좀 급했어.”
아내는 더 묻지 않았다. 해수는 그제야 국을 떠먹었다.
밥을 먹고 둘의 그릇을 씻었다. 건조대에 세울 때에는 어디에 놓아야 할지 묻지 않아도 됐다.
창밖에는 비가 그쳐 있었다. 해수는 전화번호 없이 이름만 적던 손을 떠올리다 아내에게 말했다.
“내일 잠깐 가봐야겠어.”
“책 고치는 가게? 책 때문에?”
해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책도 보고. 그 애가 다시 오는지도.”
(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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