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수선소』 제4화 기다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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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는 아홉 시가 조금 지나 집을 나섰다. 아내에게는 근무 요일을 정하러 간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신발을 신으며 떠올린 것은 윤지후라는 이름이었다.

수선소는 닫혀 있었다. 유리 너머 작업대에 토끼 그림의 책이 펼쳐져 있었다.

전화를 하려다 곽 노인의 번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는 서로 이름만 말했다.

처마 아래에서 기다리는 동안 골목으로 화물차가 들어왔다. 운전사가 길을 물었지만 해수는 모른다고 했다.

십 년 넘게 산 동네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지하철역과 아파트뿐이었다.

십 분쯤 뒤 곽 노인이 장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

“일찍 왔네.”

“근무하는 날을 안 정하고 가서요.”

“월수금 어때.”

어느 요일이든 상관없었지만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 괜찮습니다.”

“오늘은 일 없어.”

“잠깐만 있다 가겠습니다.”

밤새 닫혀 있던 가게의 종이 냄새가 짙었다. 젖은 페이지는 어제보다 옅어졌지만 가장자리가 물결처럼 들떠 있었다.

“아직 안 붙이셨네요.”

“덜 말랐어.”

해수는 만져보려다 손을 등 뒤로 돌렸다. 대신 옆의 상자를 들었다.

“그건 둬. 오늘 가져갈 거야.”

상자를 내려놓았다. 하루 배웠다고 덜 물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곽 노인이 의뢰서가 든 봉투를 건넸다.

“찾아간 날짜 있는 건 따로. 없는 건 그냥 둬.”

날짜와 이름을 확인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해수는 오른쪽 빈칸을 가리켰다.

“여기에 완료 날짜를 쓰면 더 보기 쉽겠는데요.”

“뒤에 있어.”

뒷면에 날짜가 적혀 있었다.

“앞이 좁아서.”

해수는 펜을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새 양식을 만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열한 시쯤 여자가 천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전화 받고 마음이 쓰여서요.”

여자의 시선이 동화책에 머물렀다. 해수는 의뢰서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제가 잡아당기다가 찢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소년이 먼저 가져가려 했다는 말을 보태고 싶었지만 곽 노인이 이미 설명했을 것이다.

“급하게 받으려고 했습니다.”

여자는 찢어진 페이지 앞에서 손을 멈췄다.

“아이한테 보여주려고 했거든요. 제가 어릴 때 보던 거라고.”

엄마, 내일도 읽어줘.

여자는 첫 장 귀퉁이를 보며 가방끈을 감았다.

“어머니가 글씨 지우지 말라고 하셨어요. 더 망가지기 전에 맡기라고도 하셨고요.”

곽 노인이 찢어진 자리를 가리켰다.

“떨어진 조각은 다 있어. 마르면 맞춰서 붙일 거야.”

“자국은 남겠죠?”

“남아.”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수선비는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해수의 말에 곽 노인이 여자를 보았다.

“더 손상된 데는 비용 안 받을 거야. 원래 맡긴 작업까지 하고 연락할게.”

“다음 주 토요일에 어머니 댁에 가요. 그 전에 될까요?”

“목요일에 전화할게.”

여자가 나간 뒤에도 해수는 문을 보았다. 사과하고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지만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죄송하네요.”

“나한테는 그만해.”

해수는 남은 의뢰서를 집었다. 날짜가 잘 들어오지 않아 같은 줄을 두 번 읽었다.

점심때가 지나도록 지후는 오지 않았다.

집에 가겠다고 두 번 마음먹었지만 문밖의 발소리마다 고개가 돌아갔다.

곽 노인이 빵 두 개를 꺼냈다.

“먹고 가.”

“집에 밥 있습니다.”

“그럼 가서 먹어.”

해수는 웃다가 빵 하나를 받았다. 둘은 손을 씻고 창가 탁자에 앉았다.

“그 애, 올까요?”

“내가 어떻게 알아.”

해수는 봉지의 부스러기를 모았다. 지후는 다시 오겠다고 하지 않았다.

내일도 문을 여는지, 책이 있는지 물었을 뿐이었다. 배낭에 칫솔이 있다고 소년의 사정을 다 아는 것은 아니었다.

두 시가 넘어 의뢰서를 모두 정리했다.

“이제 가보겠습니다.”

셔츠 소매를 내리는데 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지후였다.

같은 점퍼였지만 머리는 말라 있었다. 해수를 보고 문턱에서 잠깐 멈췄다. 왜 늦었느냐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해수는 삼켰다.

“왔네.”

소년이 작업대 쪽을 보았다.

“책 있어요?”

“있어.”

(5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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