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내가 작은 카페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예쁜 가게 사진을 찾아보려던 것이 아니었다. 계산기를 켰다.
보증금, 월세, 재료비, 하루에 팔아야 할 커피 잔 수가 머릿속에 줄을 섰다.
“요즘 카페가 얼마나 많은데. 잘 안되면 어떻게 하려고?”
틀린 걱정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넉넉한 여윳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내가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그냥 생각해본 거야.”
아내는 그렇게 말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나는 현실적인 조언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대화가 짧아진 것을 설득이 끝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며칠 뒤 아내가 혼자 카페 사진을 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다른 화면으로 바꿨다.
별일 아닐 수도 있었다. 그래도 마음에 걸렸다.
아내가 내 앞에서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제야 보였다.
나는 걱정을 함께 나눈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꿈을 말할 자리를 잃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만히 돌아보니 이상한 기준이 있었다.
내가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는 새로운 인생이라고 불렀다.
아내가 새로운 일을 말하자 위험한 투자라고 불렀다.
내 꿈에는 서사를 붙이고, 아내의 꿈에는 견적서를 붙인 것이다.
부부 관계를 다루는 고트먼 연구소는 의견 충돌 속에 담긴
각자의 꿈과 그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상대의 꿈을 이해하는 것과 모든 계획에 동의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그 구분이 내게 필요했다.
아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으면 당장 계약이라도 해야 할 것처럼 긴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꿈을 듣는 시간에는 도장을 찍을 필요가 없었다.
저녁에 다시 물었다.
“카페를 하고 싶은 이유를 내가 못 들었네. 이야기해줄래?”
아내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좋아하는 커피를 내리고, 자기 취향으로 공간을 꾸미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늘 누군가에게 필요한 일을 하는 하루에서,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는 시간도 갖고 싶다고 했다.
나는 오래 함께 살았으니 아내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걱정하는지는 짐작하면서,
무엇을 기대하는지는 충분히 듣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에게는 안전하게 살고 싶은 마음과
자기 삶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있을 것이다.
나는 전자를 지키느라 후자를 자꾸 접어두라고 말했다.
가족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상대의 가능성까지 대신 판단한 셈이다.
물론 이야기를 들었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함께 쓸 돈과 시간, 감당할 수 있는 손실은 솔직하게 따져야 한다.
다만 그 검토는 아내의 꿈을 기각하기 위한 절차보다,
우리가 가능한 방법을 찾는 대화였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내 걱정도 내 말로 했다.
“나도 앞날이 불안해서 겁부터 났어.”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당장 가게를 얻는 대신,
필요한 준비와 작게 경험해볼 방법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결론은 소박했지만, 처음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계산기를 다시 켜기 전에 공책을 펼쳤다.
첫 줄에는 아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을 적었다.
숫자는 그다음 줄부터 쓰기로 했다.
아내는 사진 한 장을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좋아.”
사진을 함께 보았다.
아내가 꿈꾸는 공간에는 화려한 장식도, 특별한 무엇도 없었다.
그저 따뜻한 햇살이 스며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잠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아늑한 풍경이었다.
나는 사진보다 그 사진을 바라보는 아내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그 안에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온 작은 꿈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아내도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남아 있었다.
그것이 조금 늦었다고 해서 덜 소중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남은 인생에는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살아가고 싶다.
내가 바라보는 하늘이 있고, 아내가 바라보는 하늘이 있다.
그리고 그 하늘 아래에서 우리가 여전히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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