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지 못해도, 좋아했던 마음은 남는다-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들려주는, 박수 없는 날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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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베이스를 연습하는 소리가 방 밖으로 새어 나왔다.

같은 부분에서 몇 번이나 멈췄다. 나는 문 앞을 지나며 물었다.

“그렇게 해서 어디 무대에 설 수 있겠어?”

아들의 손이 멎었다. 표정을 보며 아차 싶었다.

방을 떠나면서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좋아하는 일에도 전망을 요구했을까.

재미있어서 한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고,

잘할 가능성이나 쓸모를 보여줘야 안심하는 어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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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보았던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외 주인공 채송화가 다시 떠올랐다.

바이올린을 사랑해 음대에 들어왔지만,

늦은 출발과 실력의 벽 앞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인물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박준영 역시 재능과 명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상처를 안고 있다.

송아의 마음이 아픈 것은 애쓰지 않아서가 아니다.

좋아하는 만큼 잘하고 싶은데,

그 둘 사이의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준영의 모습에서는 잘하는 사람도

자신이 하는 일 안에서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재능이 있으면 괜찮고 없으면 불행하다는 식으로, 삶은 단정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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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드라마가 송아에게 극적인 성공을 안겨주기를 바랐다.

숨겨진 재능이 드러나고, 무시했던 사람들이 놀라는 장면을 기대했다.

그런데 송아는 바이올린을 그만두겠다는 선택을 말한다.

좋아했던 대상을 떠나보내는 아픔까지 작품은 들여다본다.

그 선택 앞에서 쉽게 잘했다고 말하기도, 더 버티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다만 한 길을 계속 걷지 않는다고,

그 길에서 보낸 시간이 전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오래 좋아했던 마음은 결과가 좋지 않아도 실제였듯,

음악을 사랑하며 연습한 날들도 실제였을 것이다.

직업으로 남지 않아도 귀에 남은 선율과 함께했던 사람들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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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 되어 돌아보니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다.

끝내 이루지 못한 계획, 기대만큼 잘하지 못한 일이다.

나는 그것들을 설명할 때 자꾸 실패라는 한 단어로 묶었다.

그 안에서 배웠던 것과 즐거웠던 순간은 빠뜨린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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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송아와 준영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은 요란하지 않다.

상처받은 송아에게 준영은 연주와 포옹으로 마음을 전한다.

나는 그 장면에서 상대의 앞날을 보증하지 않고도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훌륭한 연주자가 될 것이라는 약속 없이, 지금 아픈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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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들 방을 다시 두드렸다.

“아까 말이 좀 그랬네. 무슨 곡 연습하는 거야?”

아이가 곡을 알려주었다. 나는 옆에 앉아 들었다.

중간에 음이 어긋났지만 이번에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

끝나자 아이가 가장 어려운 부분을 설명했다.

아까 멈췄던 이야기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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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계속할지, 다른 방식으로 남겨둘지는 앞으로 고민할 문제이다.

오늘 연습을 결산할 필요는 없었다.

밤이 되어 집 안이 조용해졌다.

방에서는 악기를 정리하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큰 무대에 오른 것도, 특별한 성과를 낸 것도 없는 저녁이었다.

그래도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조금 알게 된 날이었다.

나는 그 곡의 제목을 찾아 재생했다. 아까 몇 번 끊겼던 선율이 이번에는 끝까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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