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에도 실적을 찾는 나에게-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건네는, 아무것도 해내지 않은 하루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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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오늘은 푹 쉬겠다고 선언했다.

그러고는 메모장을 열었다.

밀린 글쓰기, 책 읽기, 운동, 집 안 정리.

휴일 계획인데 업무 분장표와 제법 닮아 있었다.

쉬는 날에도 나를 놀리는 법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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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오늘 쉰다면서?”

“이것만 하고.”

내가 자주 쓰는 말이다.

문제는 ‘이것’이 끝나면 ‘저것’이 기다린다는 데 있다.

내 휴식은 늘 다음 순번인데, 앞사람이 좀처럼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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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름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는 그렇게 지친 사람들이 모인다.

번아웃을 겪고 동네 서점을 연 영주,

취업에 거듭 실패한 뒤 바리스타로 일하는 민준,

불안정한 노동 속에서 상처받은 정서이다.

이들은 서점을 곁으로 삼아 관계를 맺고 자기 삶을 돌아본다.

서점은 사람을 단숨에 성공시키는 장소는 아니다.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먼저 흐른다.

나를 설명할 경력이나 앞으로의 계획이 잠시 없어도 앉아 있을 자리가 있다는 것.

나는 그 자리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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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나는 하루를 한 일의 목록으로 기억했다.

보고서를 끝냈고, 회의를 했고, 아이의 일을 챙겼다.

많이 해낸 날은 안심했고, 별일 없이 보낸 날은 어쩐지 손해 본 기분이었다.

회사에서는 성과를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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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퇴근한 뒤에도 그 평가 방식이 따라왔다.

산책에는 걸음 수가 필요했고, 독서에는 읽은 쪽수가 필요했다.

가족과 외출해도 사진쯤 남겨야 하루를 제대로 쓴 것 같았다.

내 마음속 부장은 퇴근 처리가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두려웠다.

일을 멈추면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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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위해 열심히 산다고 말하면서,

정작 가족 곁에 편안히 앉아 있는 나를 나는 자꾸 불성실하다고 판단했다.

휴남동 서점의 사람들을 읽으며 그 기준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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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일을 통해 보람을 얻지만, 일의 결과만으로 모두 설명되지는 않는다.

실패한 구직자에게도 취향과 친절이 있고,

지친 직장인에게도 누군가와 웃을 마음이 남아 있다.

성과가 멈췄다고 삶까지 멈춘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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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누구나 일을 내려놓고 서점을 열 수는 없다.

생활비는 계속 필요하고, 서점도 노동이 있는 곳이다.

다만 지금의 생활 안에서 잠깐 쉬는 시간까지 성과로 증명해야 하는지는 물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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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식을 잘해서 다시 더 많이 일하려고 했다.

쉬는 시간에도 다음 업무를 맡긴 셈이다.

하지만 창밖을 보는 일이 꼭 집중력을 높여야 할까.

아내와 마시는 커피가 반드시 부부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어야 할까.

그냥 함께 마셔도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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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메모장을 덮었다. 아내 옆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조금 차가웠고, 아내가 웃었던 것은 기억난다.

저녁이 되어도 목록에는 완료 표시가 별로 없었다.

습관대로 오늘 뭘 했나 따져보려다가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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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마셨고, 옆에 사람이 있었고, 한동안 서두르지 않았다.

오늘은 그렇게만 적어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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