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병가가 필요한 날이 있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가 들려주는, 아픈 마음을 대하는 우리의 서툰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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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화도 오지 않고, 업무 지시도 없고,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연락도 없는 하루. 

그냥 이불 속에서 천장만 바라보고 싶은 날이다.

그런데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쉬겠다고 말하기가 영 어색하다.

허리가 아프면 정형외과에 가고,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면 된다. 

하지만 마음이 지쳤다고 하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좀 힘들어서.”

“다들 힘들지. 기운 내!”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그 말을 듣고도 기운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5% 남으면 충전기부터 찾으면서, 

내 마음의 배터리가 바닥나면 정신력으로 버텨보겠다고 덤빈다. 

나도 그렇다. 스마트폰보다 나 자신을 훨씬 험하게 다루는 편이다.

2023년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그런 우리에게 조금 낯선 질문을 던진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쉬라고 하면서,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는 왜 자꾸 강해지라고 말하는 것일까.

드라마의 주인공 정다은은 정신건강의학과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이다. 

환자들에게 친절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애쓰는 사람이다.

그러나 다정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마음이 튼튼한 것은 아니다.

다은 역시 상처를 받고, 무너지고, 결국 자신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된다.

그 장면들이 유독 오래 마음에 남는다.

남을 돌보던 사람이 돌봄을 받아야 하는 자리에 앉는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평생 책임지는 역할에 익숙했던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특히 우리 중년들은 그렇다.

회사에서는 책임자이고, 집에서는 부모이며, 

때로는 늙어가는 부모님의 보호자이기도 하다. 

여기저기서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이 힘들다는 말을 꺼낼 자리를 잃어버린다.

그러다 누군가 “괜찮아요?”라고 물으면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그럼, 괜찮지.”

괜찮다는 말이 입에 붙어버린 것이다.

다은이 우울증을 겪으며 환자의 자리에 서게 되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그동안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자신이 아파보니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공감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공감은 상대의 처지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에 잠시 들어가 보는 일,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버거운 일인지 헤아려보는 태도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 우울하다고 하면 너무 쉽게 말한다.

“좋은 생각만 해.”

“운동 좀 해봐.”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지.”

말하는 사람은 걱정해서 하는 소리이다. 나 역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상대를 위로한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내 방식대로 빨리 괜찮아지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마음의 병은 의지가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우울증은 적절한 치료와 도움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 질환이며, 

가까운 사람의 지지와 전문적인 치료가 함께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의 상처 앞에서 유독 성급하다.

다친 다리에 깁스를 한 사람에게 당장 뛰라고 하지 않으면서, 

우울한 사람에게는 하루빨리 웃으라고 재촉한다.

아마 보이지 않는 상처의 깊이를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를 보고 나니 가족의 표정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퇴근 후 말없이 앉아 있는 배우자,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 자녀, 

별일 아니라면서 한숨을 쉬는 부모님.

예전 같으면 무슨 일이냐고 캐묻거나 해결책부터 늘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잠시 기다려주는 것도 사랑의 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기다림만으로 모든 아픔이 낫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병원에 함께 가주는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고통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 일이다.

드라마의 제목이 참 좋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아침이 온다는 것은 어둠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밤이 길었어도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 있다. 

그날의 우리는 누군가를 위로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로받아야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쯤은 스스로에게도 조금 다정해지면 어떨까.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했어도, 

평소처럼 웃지 못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다.

마음이 아픈 날까지 씩씩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은 

어쩌면 “힘내”가 아니라 “많이 힘들었겠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말은 남에게만이 아니라, 

오늘도 괜찮은 척 하루를 살아낸 나 자신에게 가장 먼저 들려주어야 할 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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