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이 진로를 바꿔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유를 다 듣기도 전에 고개를 저었다.
“그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아들은 알아봤다고 했다. 나는 더 알아보라고 했다.
자료까지 보여주자 현실은 자료와 다르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대답이 무엇이든 반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미 결론을 정해놓았던 것이다.
마지막에는 익숙한 문장을 꺼냈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아들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며칠 뒤 아내가 말했다.
“당신한테 말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조금 서운했다. 자식 걱정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까, 돌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마음을 인정하는 것과
내 방식이 옳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내가 정확히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실패할까 봐 걱정이었다. 돈과 시간을 잃을까 봐 걱정이었다.
거기에 다른 마음도 섞여 있었다.
지인들이 자녀 이야기를 할 때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부모로서 잘못 이끈 것은 아닌지,
아이가 내 조언 없이 자기 길을 가면 나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도 불안했다.
아이의 미래를 걱정한다면서 내 체면까지 함께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은 조금 과장된 표현이었다.
일부는 나를 위한 말이기도 했다.
아이와 다시 마주 앉았다.
“지난번에는 네 이야기를 제대로 안 들었네. 왜 바꾸고 싶은지부터 다시 말해줄래?”
아들은 현재의 어려움과 새로 해보고 싶은 일을 설명했다.
예상보다 알아본 것이 많았고, 아직 막연한 부분도 있었다.
나는 질문하고 싶을 때 잠깐 기다렸다.
듣는 중에도 반박 자료가 자동으로 열리는 머리를 조용히 닫아야 했다.
이야기가 끝난 뒤 내 걱정을 말했다.
“준비하는 동안 비용이 얼마나 들지, 잘 안되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걱정돼.”
‘너는 현실을 모른다’고 말할 때보다 내 마음이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필요한 정보와 준비 기간, 부모가 지원할 수 있는 범위를 함께 살폈다.
아이에게도 감당할 책임이 있고, 부모에게도 지켜야 할 생활이 있는 것이다.
모든 의견이 같아지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다른 길이 더 안전해 보였다.
그래도 아들이 왜 그 선택을 고민하는지는 전보다 알게 되었다.
사랑은 상대의 실패를 모두 막아주는 능력이 아닐 것이다.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상대가 판단하고 배우는 시간을 대신 살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자녀의 선택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아이를 대하는 온기까지 거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헤어지기 전에 물었다.
“지금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뭐야?”
아들은 자료를 한번 같이 봐달라고 했다.
나는 바로 결론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아들은 내 앞에서 다시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우선은 그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은 아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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