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일을 해보겠다고 말하던 저녁이었다.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열심히 설명했다.
준비만 잘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말도 여러 번 했다. 아내는 한참 듣다가 물었다.
“그동안 생활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순간 조금 서운했다. 꿈을 이야기하는데 왜 현실부터 묻나 싶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꿈은 내가 발표하고, 불안은 가족이 함께 감당하는 구조였다.
내 계획서에는 매출 전망은 있었지만 아내의 잠 못 드는 밤은 빠져 있었던 것이다.
영화 《미나리》의 아버지 제이콥을 보며 그 민망함이 떠올랐다.
그는 아내 모니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미국 아칸소로 이주해 농장을 일군다.
새로운 터전에서 가족의 생활은 흔들리고, 한국에서 온 할머니 순자가 합류한다.
제이콥은 자기 힘으로 무언가 이루고 싶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가족에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바라는 안정도 작거나 소심한 꿈은 아니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고, 내일의 생활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다.
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한 사람은 함께 살아갈 바닥을 살핀다.
둘 다 가족을 생각하는데도 말이 부딪친다.
사랑이 같다고 걱정의 방향까지 같지는 않은 것이다.
그 집에 할머니가 온다. 손자 데이비드가 기대한 할머니와는 꽤 다르다.
점잖고 다정한 말만 하는 어른도 아니다.
그런데 순자는 자기 방식으로 아이 곁에 머문다.
낯설던 두 사람 사이에 시간이 쌓이고, 관계가 자란다.
나는 그 모습이 좋다.
사랑은 처음부터 서로의 취향에 맞는 얼굴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함께 지내며 불편함도 겪고, 웃기도 하고, 조금씩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순자는 물가에 미나리를 심는다. 이 식물은 영화의 끝까지 끈질기게 자라난다.
나는 그 모습을 가족의 시간을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눈에 띄는 성과가 없어도 누군가는 밥을 짓고, 아이를 돌보고, 내일을 준비한다.
그런 수고가 삶의 바닥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는 화재로 농작물을 잃는 큰 시련도 찾아온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열심히 했다는 사실이 손실을 막아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생각했다.
가족이 함께 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무너진 순간에 곁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시작할 때의 풍경은 달라질 것이다.
잘못을 따져야 할 때도 있지만, 당장 지친 사람을 붙잡아주는 일이 먼저일 때가 있다.
그렇다고 가족의 힘을 누군가의 끝없는 희생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할머니의 사랑도, 아내의 버팀도 당연한 자원이 아니다.
서로의 수고를 알아보고 짐을 나눌 때 그 힘은 오래갈 수 있는 것이다.
영화를 떠올리며 내 계획서를 다시 펼쳤다.
아내에게 설명하지 않았던 위험과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적었다.
이번에는 성공하면 무엇을 할지보다,
잘되지 않을 때 어떻게 함께 버틸지를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아내에게 물었다.
“내 계획에서 당신이 제일 걱정되는 건 뭐야?”
대답을 듣다가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하지만 다시 아내의 말에 집중했다.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가족의 마음도 들어가야 할 것이다.
계획에 대해서는 더 많은 대화와 준비가 필요했다. 더 복잡해졌다.
그래도 아내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는 조금 알게 되었다.
우리 집의 뿌리도 그런 저녁에 조금씩 깊어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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