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수선소』제7화 — 잠깐만, 이것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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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메모를 보고서야 해수는 아내의 부탁을 떠올렸다.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세면대 수리.

아내는 그 시간에는 집에 있어달라고 했고, 그는 공책을 보며 알겠다고 했다.

오늘은 근무하는 날이 아니었다.

두 시 반 알람을 맞췄다. 수선소에서 집까지 이십 분이면 충분했다.

방에 들어가 세 번째 문장을 읽었다.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린다면 누가 있는지 안다는 뜻 아닌가. 그런데 앞에는 문을 연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썼다.

세 줄뿐인데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집에서는 같은 자리만 맴돌았다. 책을 한번 더 보면 다음 문장이 나올지도 몰랐다.

점심을 먹고 나설 때는 열두 시 사십 분이었다.

수선소에서 곽 노인이 종이봉투를 접고 있었다.

“오늘도 왔네.”

“책 좀 보려고요. 집에서는 잘 안 써져서.”

“저쪽 앉아.”

창가 탁자에 앉기 전에 품삯 지급일을 물었다.

“언제 받습니까?”

“월말. 계좌로 줄까?”

“네.”

계좌번호를 적으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저녁에 아내에게 물어봤다고 말할 수 있었다.

공책의 네 번째 줄에 펜을 댔다.

토끼는 문을 밀었다.

너무 쉽게 들어가는 것 같아 지웠다.

토끼는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키가 걸렸다. 그림의 창문은 높았다. 발판이라도 놓아야 하나 생각하다 펜을 내려놓았다.

곽 노인이 지나가다 공책을 보았다.

“어제보다 줄이 늘었네.”

누가 잠깐 보았다는 것만으로 글씨가 서툴어 보였다.

두 시가 넘어 지후가 왔다.

“오늘도 써요?”

“쓰려고 앉아 있지.”

소년은 작업대로 갔다. 책을 언제 찾으러 오는지 묻더니 모서리에 짚었던 손을 뗐다.

“그럼 이제 못 보겠네요.”

“찾아가면.”

노인의 대답에 지후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문 근처로 움직이며 화면을 누르다 돌아왔다.

“여기 와이파이 없어요?”

“없어.”

해수가 물었다.

“뭘 찾아?”

“책이요.”

화면의 검색창에는 토끼와 집, 동화책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다른 표지들이 줄지어 나왔다.

“안쪽에 제목 있을 텐데.”

지후는 손을 씻고 책을 살폈다. 글씨를 찍으려는 순간 전화기가 꺼졌다.

“배터리 없어요.”

“내 걸로 찾아보자.”

둘은 창가에 앉았다. 같은 제목이라도 표지가 달랐다. 몇 번 화면을 넘기자 익숙한 토끼가 나왔다.

“이거?”

“그거요.”

판매는 끝나 있었다. 다른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은 더 없어요?”

책등과 안쪽 몇 장은 있었지만 마지막 그림은 없었다. 해수는 다른 페이지를 열었다.

두 시 반 알람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껐다.

“가야 돼요?”

“응. 집에 수리하는 사람 와서.”

“그럼 됐어요.”

소년이 의자를 밀었다. 해수는 아래쪽의 사진을 보았다. 비슷한 표지가 잠깐 보인 것 같았다.

“잠깐만. 이것만 보고.”

같은 토끼였지만 다른 이야기였다. 곽 노인이 벽시계를 보았다.

“가야 된다며.”

“네. 금방요.”

해수는 오래전에 책을 읽었다는 사람의 글을 열었다. 댓글에 집 앞에서 기다리는 토끼가 언급되어 있었다.

눌러보는 동안 전화가 울렸다.

“고객님, 세면대 수리 왔는데요. 집에 안 계세요?”

해수는 일어났다.

“지금 갑니다. 이십 분 정도면…….”

“다음 예약이 있어서요. 기다리면 시간이 넘어가요.”

시계는 세 시 사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집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욕실 대야도 아침 그대로였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기사님 다녀갔어?”

“못 만났어. 수선소에 갔다가 좀 늦어서.”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오늘 겨우 맞춘 거야. 당신한테 부탁해서 되는 줄 알았는데.”

“시간을 못 본 건 아니고, 책을 좀 찾다가—”

해수는 눈을 감았다. 아내는 두 번이나 일정을 바꿨다. 자신은 집에 있으면 됐다.

“미안해. 내가 다시 예약할게.”

“이번에는 당신 일정에 맞춰. 나한테 맡기지 말고.”

통화를 마치고 기사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 다음 주 화요일 오전으로 약속을 잡았다.

냉장고의 메모 아래에 새 날짜를 적고, 옆에 자신의 이름을 썼다.

(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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