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수선소』제8화 — 돌아오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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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내려놓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야. 공책 두고 갔어.”

곽 노인이었다. 가방을 열어보니 공책이 없었다.

“내일 가져가겠습니다. 지후는 갔습니까?”

“아직 있어.”

“아까 찾던 책, 더 찾아봤어요?”

“네 전화 없는데 뭘 찾아.”

해수가 말을 잇기 전에 수화기 너머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묻는다. 네가 찾던 그림.”

“찍으면 되죠.”

“맡긴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해수는 침대 끝에 앉았다. 사진을 남기면 될 일을 자신은 책을 구해주려 했다.

지후는 사달라고도, 찾아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검색 화면을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해수는 책을 건네면 소년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까지 생각했다.

전화를 내려놓자 공책이 없는 책상이 낯설었다.

아내는 저녁 무렵 돌아왔다. 해수가 가방을 받으려 했지만 그대로 들고 들어왔다.

식탁에는 데운 국과 반찬이 놓여 있었다.

“수리는 화요일 오전으로 잡았어. 그날 내가 있을게.”

“응.”

아내는 옷을 갈아입고 앉았다. 한동안 수선소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무슨 책을 그렇게 찾았어?”

해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지후가 어릴 때 봤던 책. 마지막 그림이 보고 싶은 것 같아서.”

“그 애한테는 중요한가 보네.”

“응.”

“여기 고장 난 것도 나한테는 중요해.”

해수는 아내를 보았다.

“알아.”

아내가 국그릇을 당겼다.

“당신이 나갈 데가 생긴 건 좋아. 글 쓰는 것도 좋고. 그런데 당신이 나간 동안 생기는 일은 계속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건가 싶었어.”

그는 밥그릇 가장자리의 쌀알을 모았다. 밖에서는 할 일이 눈에 보였다. 상자를 접고 책을 찾아주면 됐다. 집에서는 누군가 해놓은 일 사이에 자신의 일이 숨어 있었다. 그것을 묻지 않고 아내가 말해주기를 기다렸다.

“내일은 몇 시에 나가?”

“왜?”

“나가기 전에 내가 해둘 거 있나 해서.”

아내는 잠시 생각했다.

“분리수거. 베란다에 쌓였어. 수리 날짜도 전날 한번 확인하고.”

해수는 달력에 적었다. 아내는 그 모습을 보다 밥을 마저 먹었다.

다음 날 오후 지후는 수선소 창가에 앉아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에 마지막 그림이 떠 있었다.

“찍었네.”

“맡긴 분이 된대요.”

해수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책은 못 찾았어.”

“사진 있으면 돼요.”

소년은 화면을 줄여 그림 전체를 보았다. 해수는 그 말을 먼저 물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곽 노인이 공책을 내밀었다. 펼쳐보니 세 문장과 지운 문장들이 그대로 있었다.

“더 썼네요.”

“한 줄.”

지후는 세 번째 문장을 읽었다. 해수는 설명을 보태지 않았다.

“불러줄 때까지 있어요?”

“토끼가?”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수의 문장은 기다리는 데서 끝나 있었다. 누가 이름을 부르는지, 얼마나 기다리는지 정하지 않았다.

“아직 모르겠어.”

“계속 안 부를 수도 있잖아요.”

해수는 대답하지 못했다. 지후는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켰다. 사진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러면 내일 다시 와도 되고.”

해수는 펜을 꺼내 공책 옆에 놓았다. 바로 쓰지는 않았다.

“그림, 한번 더 봐도 될까?”

지후가 휴대전화를 탁자 가운데로 밀었다. 해수는 몸을 숙였다. 토끼 앞의 문은 여전히 조금 열려 있었다. 이번에는 문 안쪽보다 토끼가 서 있는 길을 오래 보았다.

(9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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