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부터 집안이 어수선했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쌓여 있고, 세탁기 안에는 어제 돌린 빨래가 그대로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반찬은 있는데 무엇을 꺼내 먹어야 할지 막막했다.
평소 같으면 별일 없이 지나갔을 아침이다.
그런데 아내가 몸살로 누워 있자 집안의 모든 일이 갑자기 문제로 떠올랐다.
회사에서는 복잡한 업무도 척척 처리하면서
집에서는 양말 한 짝의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일단 세탁기부터 열었다. 빨래를 널고 나니 바닥에 먼지가 보였다.
청소기를 돌리는 사이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밥을 하려니 쌀부터 씻어야 했고, 밥을 먹자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를 끝내면 다음 일이 생겼다.
집안일에는 퇴근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는 아내가 집안일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만히 돌아보니 잘하는 것과 혼자 감당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깨끗한 욕실, 채워진 휴지, 정리된 신발장, 냉장고 속 반찬까지.
이 모든 것은 저절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먼저 알아보고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상이었다.
사회학자 앨리슨 다밍거는
가사노동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인지 노동’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해야 할 일을 미리 알아차리고, 방법을 찾고, 결정하고,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는 정신적 수고이다.
생각해 보면 아내는 빨래만 한 것이 아니었다.
세제가 떨어질 때를 기억하고, 가족들의 옷을 구분하고,
비가 오기 전에 빨래를 거두는 일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설거지 몇 번 하고 집안일을 도왔다며 생색을 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일일이 알려줘야 움직였다면,
아내는 일을 하면서 나를 관리하는 일까지 떠맡았던 셈이다.
“뭐 도와줄까?”
그동안은 제법 다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말 속에는 집안일이
당연히 아내의 몫이라는 생각이 숨어 있었던 것 같다.
함께 사는 집에서 함께 해야 할 일인데,
나는 그저 가끔 도와주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아내도 내가 밖에서 겪는 고단함을 모두 알지는 못할 것이다.
부부란 서로의 수고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두 사람인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아내의 수고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조금씩 회복하자 집안도 다시 제 모습을 찾았다.
예전 같으면 나 역시 자연스럽게 원래 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저녁 설거지와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내 몫으로 정했다.
처음에는 그릇을 엉뚱한 자리에 넣고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아내가 답답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럴 만했다. 수십 년을 살아온 집에서 쓰레기봉투 하나 못 찾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아내를 부르지 않고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해내는 일이 아니라,
아내가 다시 건강해졌다고 해서 내가 맡은 일을 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가끔은 귀찮다. 피곤한 날에는 내일로 미루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럴 때면 아내도 이런 마음으로 수없이 싱크대 앞에 섰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희생으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상대가 매일 짊어지고 있던 작은 무게를
내 어깨에도 조금씩 나누어 싣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아내가 아팠던 며칠은 불편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한 사람의 수고가 눈에 들어왔다.
고마움은 상대의 수고를 알아보는 순간 시작되지만,
그 수고를 함께 나누기 시작할 때 비로소 생활이 된다.
오늘도 저녁을 먹고 싱크대 앞에 선다.
거창하게 사랑을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세제를 묻힌 수세미로 그릇을 하나씩 닦는다.
내일도, 아내가 건강한 날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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