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우리는 각자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는 거야.”
겉으로는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어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누구나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가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과 싸우며 살아간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마음에 걸리는 대사가 달라진다.
20대에는 “성공할 거야”라는 말에 가슴이 뛰더니 50대가 되니
“나는 아직 괜찮은 사람인가”라는 한마디에 눈시울이 적셔지기도 한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황동만이 딱 그렇다.
20년째 영화감동에 데뷔하지 못한 동만은 대학 때 지인들이 하나 둘 성공하는 동안 여전히 제자리…
그래서인지 그는 초라한 현실을 덮으려 쉴 새 없이 주둥이를 턴다.
남의 이야기에 끼어들고, 괜히 시비를 걸고, 자신의 존재감을 어떻게든 드러내려고 한다.
처음에는 그저 ‘피곤한 인간’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의 한 마디가 가슴에…
“잘 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 땐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
아, 이 사람은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사라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구나!
생각해 보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자신의 성적으로, 누군가는 직장의 직함으로, 누군가는 집과 자동차로,
또 누군가는 SNS의 ‘좋아요’ 숫자로 자신이 아직 괜찮은 사람임을 확인한다.
나도 가끔 그렇다.
괜히 인생 경험을 꺼내놓고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말이야…”
사실은 충고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나도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동만의 곁에 영화사 기획PD 변은아가 있다.
은하 역시 겉보기에는 번듯하지만 어린 시절 받은 유기(遺棄) 공포에 갇혀
상처받지 않으려 자신을 꽁꽁 숨긴 채 살아온 결핍투성이다.
세상은 20년째 헛물켜는 동만을 ‘영화판 공식 쩌리’라 비웃지만 은하의 눈에는 전혀 다르게 읽힌다.
” 저 남자는 확실히 도태됐고 확실히 버려졌다. 그런데 왜 약하지 않지?
친구들한테 상처받고 눈물 콧물 펑펑 쏟고도, 다음 날이면 또 넉살 좋게 나타난다.
이 남자, 약하지 않다. 심지어 마음 속에 천 개의 문이 활짝 열려 있어.
이 남자, 된다. 되는 것 보고 싶다!”
세상이 매긴 성적표로는 완벽한 낙오자인데,
결핍투성이인 은하의 눈에 동만은 ‘자기 밑바닥을 온몸으로 견뎌내면서도
마음의 문을 닫지 않은 존재’였던 것이다.
늘 버려질까 두려워 안감힘을 쓰던 은아와,
무가치해 보일까 봐 끊임없이 주둥이를 털어대던 동만,
은아가 동만의 상처를 비웃지 않고 온전히 귀 기울여줄 때,
비로소 동만의 소란스럽던 불안이 멈추고 평화가 찾아온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세상의 지위나 소유, 성공의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고귀한 ‘본연의 가치’에 있다.
남들이 보기엔 낙오자라 할지라도, 존재의 무게로 달아보면
동만 역시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사람인 것이다.
진정으로 상대를 ‘위하여 사는 삶’의 핵심은 은아와 동만이 그랬듯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품어주는 데 있다.
잘나고 성공할 때만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무가치함과 싸우며 피투성이가 되었을 때
그 결핍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곁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참된 사랑’이자,
조건 없이 묶인 ‘식구(食口)’의 마음일 것이다.
그러니 오늘 가족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
“당신, 요즘 참 잘하고 있어.”
“당신이 있어서 참 다행이야.”
결국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은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무가치하다고 느끼면서도 끝내 살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 중 하나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자신에게도 한마디 해주자.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다.”
그 말이면 충분하다.
사람은 완벽해서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 자체로 이미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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