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우리에게 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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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된 딸이 있다.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딸 아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뜻밖의 사람들을 만난다.

살아 있을 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조문객들의 입을 통해 하나씩 흘러나온다.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와 남들이 알고 있던 아버지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장례식장은 슬픔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읽어 나가는 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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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부모님을 생각하면 비슷한 마음이 든다.

어릴 때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였다. 밥을 먹으라 하면 밥을 먹어야 했고, 일찍 들어오라 하면 잔소리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부모는 원래 부모이고, 자식은 원래 자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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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이가 들고 내가 부모가 되니 그때의 아버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에 잔소리였던 말이 걱정이었고, 무뚝뚝함이라고 생각했던 표정에는 피곤함이 있었으며,

고집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에는 한평생 지켜온 자기 방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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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도 처음부터 부모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젊은 날에는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딸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이루지 못한 꿈도 있었을 것이다.

사랑에 설레기도 했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 시절 우리는 부모의 얼굴만 바라본다.

그에게도 한때 청춘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린다.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특별한 것은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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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장례식장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아버지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고집스럽고, 또 때로는 남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정지아 작가 역시 실제 아버지를 돌아보며 ‘혁명가’가 아닌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작품의 방향을 잡았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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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참 여러 얼굴이 있다.

회사에서는 과장이지만 집에서는 남편이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지만, 자식 앞에서는 무뚝뚝한 아버지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까다로운 사람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고마운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니 부모를 한두 가지 기억만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가혹한 일이다.

더구나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가장 익숙한 사람이다.

그래서 가장 쉽게 오해한다. 매일 보니까 안다고 생각한다.

오래 함께 살았으니까 잘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익숙함은 이해와 같은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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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더 친절하게 묻는다.

“어디서 오셨어요?” , “어떻게 지내셨어요?”, “요즘 힘든 일은 없으세요?”

그런데 부모에게는 묻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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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젊었을 때 무슨 꿈이 있었어요?”

“아버지는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였어요?”

“그때는 어떻게 견디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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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러한 질문을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부모의 인생이 조금 다르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부모를 이해하는 데는 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살아 있을 때는 부모의 부족한 부분이 먼저 보이고, 떠난 뒤에는 이상하게도 그 사람이 견뎌온 세월이 보인다.

장례식장에서야 한 사람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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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부모님이 아직 곁에 계신다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늘 저녁 부모에게 전화해서 ‘별일 없으셨는지, 식사는 하셨는지’를 묻는 것.

그리고 평소에는 하지 않던 질문 하나를 건네는 것이다.

“아버지, 젊었을 때는 뭐가 제일 하고 싶으셨어요?”

그 한마디가 어쩌면 부모를 다시 만나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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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이해하는 일은 부모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받았던 상처까지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을 부모라는 역할 하나에 가두지 않고, 나와 똑같이 서툴고 흔들리며 한 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부모를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자식인 나도 조금 편안해진다.

완벽한 부모를 기대하지 않게 되고, 나 역시 완벽한 자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가족이란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끝내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조금 더 이해해보려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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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아직 부모님이 곁에 계신다면 오늘 한 번 물어보자.

“아버지, 어머니 제가 모르는 부모님의 삶에 대해 듣고 싶어요. 해주실 수 있으세요?”

대답을 듣는 데 평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그저 부모와 함께할 수 있는 남은 시간 동안 조금씩 더 알아가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Comments

2의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우리에게 묻는 것”에 대한 답변

  1. 김형준 아바타
    김형준

    자녀의 입장에서는 부모님이 그림자처럼 우리 곁에 항상 계시리라는 편안함과 피곤함이, 부모된 입장에서 자녀에게는 무거운 짐을 피하고 좋은 것만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서로에게 부담은 줄여주지만 본래의 모습을 가리게 되어 평생 알아가려고 해도 다 알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보이네요.
    작은 틈새로 들어오는 빛이 방 전체를 밝히듯이 부모와 자녀 간의 얼마간 잠깐 열리는 그 틈새를 통해 상대를 온전히 알 수 있게 되길 바라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 감성꼰대 아바타
      감성꼰대

      찾아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가 어머니가 조금 더 이해하게 되네요. 그것이 철이 들었다는 의미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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