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식탁에는 빈 의자가 늘었다-일주일에 한 끼, 서로의 하루를 받아주는 시간

•

저녁을 차리고 숟가락을 놓다가 하나를 다시 치웠다.

큰아이는 늦는다고 했고, 둘째는 밖에서 먹었다고 했다.

막내도 약속이 있었다.

아내와 식사 시간까지 엇갈린 그날, 식탁에는 나와 반찬만 남았다.

​

아이들이 어릴 때는 밥 한 끼 먹이는 일이 전쟁이었다.

앉아라, 흘리지 마라, 한 입만 더 먹어라.

그때는 조용히 먹고 싶었는데, 막상 조용해지니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소원은 이루어졌는데 전혀 기쁘지 않다.

​

휴대폰을 켜고 영상을 틀었다. 누군가 맛있게 먹으며 설명했다.

화면 속 사람은 말이 많았지만 내 하루를 묻지는 않았다.

가족 단체 대화방을 열어보았다. 늦는다, 먹었다, 먼저 잔다.

소식은 오가는데 이야기는 없었다.

​

같은 집에 살면서 서로의 하루는 짧은 알림으로만 도착하고 있었다.

괜히 서운했다. 가족이라면 같이 밥도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젊은 날의 내가 떠올랐다.

야근하고, 약속 잡고, 집에서는 피곤하다며 말부터 줄였다.

가족을 위해 바쁘다고 했지만 가족과 먹는 저녁은 늘 뒤로 미뤘던 것이다.

빈 의자를 만든 것은 아이들의 바쁨만이 아니었다.

​

아들들은 성장했고 각자의 시간이 필요했다.

부모와 따로 밥을 먹는 일이 곧 사랑이 줄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다만 저절로 만나던 시절이 지나났고,

이제는 만나기 위해 조금씩 시간을 맞춰야 했다.

​

가족 식사를 돕는 ‘패밀리 디너 프로젝트’도 음식뿐 아니라

즐거움과 대화를 함께 강조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는 저녁만 고집하지 않고 아침이나 간식을 함께하는 방법도 제안한다.

나는 그 말을, 함께 먹는 횟수를 채우라는 숙제보다

서로 편하게 만날 기회를 만들라는 권유로 받아들였다.

​

그런데 식탁에 모이기만 하면 편안할까.

내 과거 실적을 떠올리니 조금 찔렸다.

성적은 어떤지, 진로는 정했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아이는 밥을 먹으러 앉았는데 과연 제대로 소화가 됐을까?

​

이번에는 다른 식탁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

가족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일주일에 한 번쯤 같이 먹을 수 있을까? 다들 가능한 시간 알려줘.”

​

일요일 저녁으로 정했다.

못 오는 날은 미리 말하고, 그다음 기회를 찾기로 했다.

메뉴와 준비도 함께 나눴다.

가족의 온기를 되찾겠다는 계획 때문에

한 사람의 주방 일이 더 늘어나서는 곤란한 것이다.

​

첫 저녁은 대단하지 않았다. 있는 반찬에 국을 데우고 달걀을 부쳤다.

나는 평소처럼 휴대폰을 식탁에 올렸다가 치웠다.

아이들에게만 내려놓으라고 하기에는 내 손도 너무 익숙했다.

​

“이번 주에 웃긴 일 없었어?”

막내가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큰아이도 말을 보탰다.

중간에 충고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지만 국을 한 숟갈 먹었다.

오늘은 내 경험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먼저 담아두고 싶었다.

대화가 잠깐 끊겨도 괜찮았다.

반찬을 건네고, 물을 따라주고,

누가 마지막 달걀을 먹을지 눈치를 보는 시간도 함께 사는 모습이었다.

​

식사는 영양을 채우는 일이면서 하루를 누군가 앞에 내려놓는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잘한 일만 보고하지 않아도 되고, 별일 없었다고 말해도 자리가 있는 시간이다.

밥을 다 먹고 아이들과 그릇을 옮겼다.

​

나는 다음 주에도 꼭 모이라고 강조하려다, 오늘 함께 먹어 좋았다고만 말했다.

식탁의 빈 의자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일요일 저녁에는 누가 앉을지 기다려볼 수 있게 되었다.

​

남은 국을 냉장고에 넣으면서 생각했다.

다음번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 하나를 물어봐야겠다.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