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에 사랑을 생각하면 심장이 먼저 뛰었다.
누군가를 만나면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이 났고, 연락이 조금 늦어도 괜히 서운했다.
사랑은 그렇게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사랑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진다.
설레는 사람보다 내 편인 사람이 더 가슴 깊이 울림을 준다.
좋은 날 함께 웃는 사람보다, 내가 무너졌을 때 말없이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고맙다.
이적의 <다행이다>를 다시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노래는 처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고백처럼 들린다.
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그 안에는 연애보다 더 오래된 감정이 들어 있다.
바로 ‘당신이 내 곁에 있어서 내 삶이 덜 외롭다’는 감사이다.
2007년 발표된 이 곡은 이적이 당시 연인을 위해 만든 노래였고, 그해 12월 결혼식에서 직접 축가로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에서 마음에 다가오는 구절은 함께 밥을 먹고, 힘들 때 눈물을 흘리고,
저린 손을 잡아주고, 별것 아닌 위로라도 건넬 수 있다는 평범한 순간들이다.
생각해 보면 결혼 생활도 그렇다.
처음에는 서로의 장점이 좋아서 사랑하고 결혼한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면 장점보다 단점이 먼저 보인다. 양말을 뒤집어 벗어 놓는 습관,
대답하지 않는 버릇, 피곤하면 말수가 줄어드는 모습까지 보인다.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졌다고 투덜대지만, 어쩌면 그때부터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상대의 좋은 모습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평범한 하루까지 함께 살아주는 것.
사랑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젊을 때는 “당신 없이 못 살아”라고 말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조금 다른 말을 하게 된다.
“당신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네.”
이 말에는 설렘보다 깊은 것이 있다.
함께 견딘 시간에 대한 감사이다.
삶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를 거칠게 흔든다. 직장에서 마음이 다치고, 돈 때문에 속이 타고, 자식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부모의 병원에 함께 가야 하고, 어느 순간에는 친구의 부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때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괜찮아?” 하고 물어주는 한 사람이다.
말없이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주는 사람이다.
내가 세상에서 조금 밀려난 것 같을 때 “그래도 나는 네 편이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오래된 부부를 보면 사랑이란 감정의 크기가 아니라 곁을 지켜온 시간의 깊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가끔 부부싸움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누가 이겼는지는 나중에 생각하고, 오늘 저녁은 같이 먹어요.”
살다 보면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너무 많은 힘을 쓴다.
그런데 부부 사이에서는 이기는 것보다 다시 말을 거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손을 내밀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내일 아침에도 같은 식탁에 앉는 것. 그것이 어쩌면 사랑의 가장 현실적인 모습이다.
〈다행이다〉가 오래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적은 사랑을 거창한 언어로 포장하기보다 일상의 작은 장면으로 끌어내렸다.
이적 역시 사랑 노래가 보편적인 정서이고, 음악이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 오늘 집에 돌아가면 배우자의 얼굴을 한 번 가만히 바라보자.
매일 봐서 너무 익숙한 얼굴일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고마움을 잊고 살았을 얼굴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한번 말해보자.
“참 다행이다.
내 인생에 당신이 있어서.”
사랑은 어쩌면 뜨거운 고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하루 끝에 건네는 이 한마디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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