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날이며 이상하게도 아침부터 마음이 바빠진다.
“진료카드 챙기셨어요?”, “약은 가방에 넣으셨어요”
“예약되어 있어서 10시 전에 나가야 해요.”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도 어머니가 다시 묻는다.
“우리 어디 가는 거지?”
순간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말하고 나니 마음이 철렁했다.
어머니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천천히 준비하는 것도,
같은 것을 다시 묻는 것도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런데 나는 왜 어머니께 날카롭게 말했을까.
주차장은 복잡하고, 병원은 붐비고, 접수창구 앞에는 줄이 길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별것 아닌 말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집에 돌아오는 길,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사실 어머니께 화가 난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아픈 어머니를 바라보는 두려움, 앞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돌봄에 대한 막막함,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이 한꺼번에 밀려온 것이다.
사랑하지만 체력이 없고, 마음은 있는데 여유가 없다.
살다 보면 이런 순간이 있다.
평소라면 웃고 넘길 말에 예민해지고,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오히려 가시 돋친 말을 한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다정함에도 체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조금 믿게 됐다.
몸이 지치면 마음의 여백도 줄어든다.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끼니까지 거르면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난다.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내 마음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으면 따뜻한 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버거운 법이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어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오늘 데려다줘서 고맙다. 너도 피곤할 텐데 고생했다.”
아픈 사람은 어머니인데, 오히려 나를 걱정하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 손을 살며시 잡았다.
“어머니, 다음에는 천천히 준비하세요. 제가 기다릴께요.”
어머니가 웃었다.
그날은 그 짧은 말 한마디가 참 따뜻했다.
가족은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때로는 짜증도 내고, 후회도 하고, 다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서로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부모님의 건강을 챙기는 만큼 내 건강도 챙기자.
내가 건강해야 어머니의 손을 오래 잡아드릴 수 있고, 내가 여유가 있어야 같은 질문에도 웃으며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정함은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오래 지속되는 다정함은 결국 체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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