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 후 멍하니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든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 오늘 하루 뭐 했지?’
회사에 갔다가 돌아왔고, 밥을 먹었고, 사람들과 몇 마디 말을 나눴다.
특별히 나쁜 일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텅 비어 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른의 삶을 버텨내지만,
속으로는 조금씩 곪아 터지고 외로운 것이 우리네 자화상이다.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 유독 마음이 먹먹했던 이유도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이 드라마에는 악당이 없다. 그렇다고 인생을 뒤집어놓을 만큼 거대한 사건도 많지 않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지쳐 있다. 마치 우리처럼 말이다.
염미정은 말한다.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이 한마디가 참 아프다.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노동인데, 가족에게 괜찮은 척하는 것도 노동이고,
친구에게 웃어주는 것도 노동이다.
심지어 사랑받기 위해 괜찮은 사람인 척하는 일도 노동이다.
그러니 어느 날 문득 ‘그냥 지쳤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때 미정은 구씨에게 뜬금없이 말한다.
“날 추앙해요.”
처음 들으면 웃긴 말이다. 사랑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결혼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하필 ‘추앙’이라니 그런데 곱씹어보면 이보다 절실한 무탁도 없다.
“날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주세요.”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증명하지 않아도 그냥 나를 귀하게 봐주세요.”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충고보다 인정인지도 모른다.
박해영 작가는 인터뷰에서 ‘추앙’을 타인을 습관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는 것과 연결해 설명했다.
구씨 역시 미정과의 관계를 통해 사람을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자유로움을 배운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을 평가한다.
“저 사람은 왜 저래?”
“저 나이에 저렇게 살면 어떡하지?”
“저 집 애는 잘 나가는데 우리 애는 왜 저럴까?”
그러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더 가혹하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
어쩌면 우리가 갇혀 있는 감옥은 환경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평가하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해방일지》의 ‘해방’은 회사를 그만두거나 서울을 떠나는 일이 아니다.
남들이 정해 놓은 행복의 기준에서 조금씩 빠져나오는 일이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하고, 더 성공해야 인정받고,
남보다 앞서야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가?’
돈일 수도 있고, 직장일 수도 있고, 가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먼저 해방되어야 할 것은
‘남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나’인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를 겨우 버텼다면 그것도 잘한 일이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넸다면 그것도 충분히 좋은 삶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조금 덜 판단하고,
조금 더 귀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 역시 해방을 향해 가는 한 걸음이다.
구씨가 결국 배운 것도 그것이었을 것이다. ‘한 발, 한 발, 어렵게, 어렵게’ 살아가는 것.
우리도 그렇게 살아보자.
오늘 하루만큼은 나를 조금 덜 미워하고, 가족을 조금 덜 판단하고,
누군가의 서툰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어쩌면 해방은 그렇게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 하나가 바뀌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나를 구원해줄 먼 곳을 찾아 헤맬 필요는 없었다는 것을…
우리를 진정으로 살게 하는 것은
결국 내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단 한 사람의 다정한 온기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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