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식탁에 앉아 가족들을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다.
아빠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고 있고, 엄마도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다.
아이는 이어폰을 꽂은 채 화면을 넘긴다.
한 식탁에 네 사람이 앉아 있는데, 이상하게도 서로 얼굴을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전에는 밥을 먹다가 눈이 마주치면 이런저런 이야기가 시작됐다.
“오늘 학교는 어땠어?”, “당신은 별 일 없었어?”
별것 아닌 질문 하나가 하루의 피곤함을 잊게 했다.
그런데 요즘은 눈을 마주치기 전에 알림이 먼저 온다.
몸은 같은 공간에 있는데 마음은 각자의 작은 화면 속으로 흩어진다.
스마트폰을 오래 내려다보는 자세는 목과 어깨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실제 연구에서도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과 목 통증·근골격계 증상의 연관성이 보고되어 왔다.
다만 ‘거북목’ 자체를 하나의 질병이나 통증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단정하기에는 아직 연구의 한계가 있다.
그런데 나는 가끔 다른 종류의 ‘거북목’을 생각한다.
목만 굽은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화면을 향해 굽어버린 상태이다.
가족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꾸 휴대폰을 확인하는 행동을 ‘퍼빙(Phubbing)’이라고 부른다.
부모의 퍼빙이 부모·자녀 관계와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 문제와 관련될 수 있다는 연구도 있고,
대화 중 상대방이 스마트폰을 사용할수록 대화의 친밀감을 낮게 느낄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물론 스마트폰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도 스마트폰 없이는 길 하나 제대로 못 찾는 사람이다.
가족 단체방에서 안부를 묻기도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의 얼굴을 화면으로 만나기도 한다.
문제는 스마트폰이 가족을 연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가족을 보지 못하게 하는 벽이 될 때이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아주 작은 실험을 해보면 좋겠다.
식탁에 앉아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는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든다.
“오늘 하루 어땠어?”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아이의 대답이 시큰둥해도 괜찮다.
배우자가 “별일 없었어”라고 짧게 대답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대단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네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몸도 관계도 신기하게 닮아 있다.
오랫동안 한 방향으로 굽어있으면 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가끔은 의식적으로 자세를 바꿔야 한다.
허리를 펴고, 목을 세우고, 고개를 들어야 한다.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늘 화면만 바라보다 보면 가족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표정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의 변화도 놓치기 쉽다.
그러니 오늘은 스마트폰보다 가족의 얼굴을 먼저 보자.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된다.
그 순간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아, 내가 이렇게 소중한 사람을 너무 오래 못보고 살았구나!’
허리를 펴는 데는 몇 초면 된다.
어쩌면 관계를 다시 펴는 일도 그만큼 작은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자.
굽은 목도 펴고, 굽어 있는 마음도 조금 펴보자.
가족은 가까이 있어서 소중한 것이 아니라,
소중하게 가까이 바라봐야 할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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