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 말이 없는지 몰랐다.
퇴근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다녀왔어” 한마디 하고,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웃으며 들어주면서도
정작 자신의 하루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었다.
아내가 “회사 힘들어요?” 하고 물으면 대답은 늘 비슷했다.
“뭐, 다 그렇지.”
그리고 다음 날이면 또 출근했다.
1985년에 나온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들으면 그런 아버지들이 떠오른다.
이 노래는 젊은 날의 야망과 고독을 킬리만자로를 오르는 표범에 빗대어 표현한 곡이다.
작사가 양인자가 자신의 좌절과 인생관을 적어둔 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젊을 때는 산 정상만 보인다.
더 좋은 직장, 더 넓은 집, 더 많은 돈.
아이를 잘 키우고 부모에게도 잘하고, 남들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4050이 되고 나면 조금 다른 것이 보인다.
산을 오르는 사람의 배낭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안에는 아이 학원비가 있고, 부모님 병원비가 있고, 대출금이 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아내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걱정도 들어 있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아이는 방에서 공부하고 아내는 설거지를 한다.
가족은 모두 한집에 있는데 이상하게 아버지만 혼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늘 힘들었어?”
아내가 묻는다.
“괜찮아.”
사실 괜찮지 않은데도 그렇게 말한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빠, 요즘 회사 어때?”
“그냥 그렇지. 너는 공부나 해.”
가족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힘든 마음까지 가족에게 짐이 될까 봐 감추는 것이다.
그래서 중년의 고독은 사람이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내 마음을 보여주지 못할 때 생기는 고독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도 좋겠다.
저녁 식탁에서 “오늘 회사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어”라고 말해도 된다.
아내에게 “당신도 많이 힘들었지?”라고 먼저 물어도 된다.
아이가 성적표를 들고 왔을 때 점수부터 보지 말고 “요즘 네 마음은 어때?”라고 물어도 된다.
아버지도, 남편도, 어머니도 늘 강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너무 오래 표범처럼 살아왔다.
혼자 견디는 것이 책임이라고 생각했고,
무너지지 않는 것이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가족은 우리가 짊어진 배낭을 대신 들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늘은 산을 조금 내려와도 좋겠다.
퇴근길에 꽃집 앞에서 잠시 멈추고,
집에 들어가 아이의 뒷모습을 한 번 바라보고,
소파에 앉은 배우자의 지친 얼굴에 “오늘도 고생했어”라고 말해보자.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야만 잘 산 것은 아니다.
어쩌면 진짜 잘 산다는 것은 끝까지 혼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돌아서서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는 것인지도 모른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높은 곳을 향해 걸어온 우리에게도 이제는 돌아갈 집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집에는 이런 말 한마디가 기다리고 있으면 좋겠다.
“당신, 참 오래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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