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호인>- 타인의 아픔이 마음에 걸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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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팍팍해질수록 우리는 시야를 좁히고 내 밥그릇 하나 건사하기에 바빠진다.

내 통장 잔고도 걱정이고, 자식들 학원비도 걱정이고, 건강검진 결과표에 찍힌 숫자도 무섭다.

남의 인생까지 걱정할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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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변호인>의 송우석이 그랬다.

처음의 그는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다.

돈이 되는 부동산 등기와 세금 사건을 맡으며 ‘속물’이라는 말을 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고졸이면 어떻고, 배경이 없으면 어떠한가. 돈 벌어서 가족 먹여 살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실제 영화 속 송우석은 그렇게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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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철저한 이기주의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은 것은 거창한 이념도, 영웅적인 정의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고시생 시절 자신의 허기를 대가 없이 채워주었던 단골 국밥집 아주머니의 핏기 삭은 얼굴,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 아들의 멍든 몸뚱어리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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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을 당해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하는 젊은이를 눈앞에 보면서 송우석의 마음 속에 뭔가가 무너진다.

‘나는 변호사니까 법률만 보면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법률 너머에 있는 한 인간의 고통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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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과 마주하는 경험을 인간 윤리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눈앞의 타인을 하나의 숫자나 집단이 아니라 ‘나와 같은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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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우석에게 진우는 더 이상 ‘시국 사건의 피고인’이 아니었다.

국밥집에서 밥을 먹던 한 청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아들이고, 누군가에게는 친구이며, 꿈을 가진 한 청이었다.

그래서 송우석은 결국 자신에게 불리한 길을 선택한다.

돈도 안 되고, 출세에도 도움이 안 되고, 심지어 자신과 가족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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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시 생각한 본다.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다.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과 그 고통 때문에 내 삶의 일부를 내놓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정의로운 사람이 되려면 용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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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참 이상하다.

남의 눈물을 닦아주다가 내 눈가가 젖는다.

남의 억울한 이야기를 듣다가 내가 더 화가 난다.

내 일이 아닌데 하루 종일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공감은 조금 피곤하다.

하지만 그 피곤함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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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림사건 피해자들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재심에서 무죄를 인정받았다.

당시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된 강요된 자백 등이 재판에서 문제로 확인됐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저절로 밝혀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사이에는 누군가의 용기가 있었다.

누군가는 외면하지 않았고, 누군가는 불이익을 감수하며 곁에 섰다.

《변호인》이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는

단순히 ‘정의가 승리한다’는 이야기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을 때,

세상은 조금씩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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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아픔이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되는 순간, 사람은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평생 연습해야 할 정의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의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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