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의 바람은 늘 거세게 불었다.
그 바람 속에서 애순과 관식은 자라났고, 사랑을 배웠고, 부모가 되었다.
열여덜 살 소녀가 엄마를 잃고 곧바로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야 했던 시절,
그 시대에는 마음을 다스릴 틈도, 감정을 어루만질 여유도 없었다.
밥을 짓고 자식을 먹이고 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삶이었다.
그러니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웠던 것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그 서툰 시대를 살아낸 부모와,
그 부모 밑에서 자란 자식들의 마음이 어긋나는 지점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시대의 풍파를 맨몸으로 버텨내며
삶의 피로에 찌든 부모들의 굽은 등 위에는 자식을 향한 미안함이 옹이처럼 박혀 있고,
치열한 경쟁과 비교 속에서 자아의 눈을 뜬 자식들은
그들이 건넨 거친 사랑의 방식에 깊은 상처를 입는다.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
드라마 속 대사는 우리의 마음을 참 먹먹하게 한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 다정하게 따뜻한 눈빛 한번 건네지 못했던 무뚝뚝함이나,
서툰 표현 이면에 숨겨둔 눈물겨운 헌신을
자식들은 철이 든 한참 뒤에야 비로소 가슴 시리게 짐작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사랑해서 기대했고, 기대해서 힘겨웠고, 힘겨워서 모진 말을 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또 미안해했다.
어쩌면 가족의 역사는 이런 ‘미안함의 엇갈림’일지 모른다.
그런데 살아보니 알겠다.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조금 늦더라도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번역하는 일이다.
“왜 그렇게 했어?”라고 따지기 전에
“그때 많이 힘들었지.”라고 말해주는 것.
“엄마는 왜 나한텐 그랬어?”라고 묻기 전에
‘엄마도 처음 엄마가 되어, 그랬을 거야.’라고 생각해 보는 것.
우리는 평생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어도,
사실은 평생 사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너무 서툴렀을 뿐이다. 그래서 가족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서운하고,
가장 미안한 사람에게 가장 무심한 척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주 늦게서야 깨닫는다.
그 서운함의 밑바닥에도 사랑이 있었고,
그 미안함의 시작에도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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