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지인의 새 아파트 집들이에 다녀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넓은 거실에 햇빛이 가득 들어오고, 주방에는 반짝이는 식기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제법 근사했다.
“좋다. 정말 좋다.”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내가 사는 집이 갑자기 좁아진 것도 아닌데,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실이 왜 이렇게 작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괜히 내가 가진 것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사람은 참 쉽게 비교한다.
친구의 아파트, 동창의 자동차, 누군가의 자녀,
다른 사람의 연봉과 여행 사진까지 끊임없이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면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가진 것을 기준으로 내 삶을 평가하게 된다.
소득이나 재산은 절대적인 크기만큼이나
‘내가 누구와 비교하느냐’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오래 이어져 왔다.
남의 소득이 높아질 때 자신의 만족도가 낮아지는 현상도 여러 연구에서 관찰됐다.
그러니 비교하다 마음이 흔들리는 것은 나만의 못난 성격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원래 남과 나를 견주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비교가 끝이 없다는 데 있다.
어제까지는 30평이면 넉넉했는데 오늘 40평 친구를 만나면 좁아 보인다.
40평에 익숙해지면 50평이 눈에 들어온다.
새 아파트에 살면서도 더 좋은 아파트를 보면 다시 마음이 흔들린다.
좋은 것을 얻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인간의 마음은 새로운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쾌락 적응’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물질적 만족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진짜 가난은 무엇일까.
돈이 없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계속 남의 것을 바라보며
“나는 왜 이것밖에 없지?”라고 생각한다면 마음은 늘 부족하다.
반대로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오늘의 밥 한 끼를 함께 먹을 사람이 있고,
힘들 때 전화할 사람이 있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삶은 이상하리만큼 든든해진다.
1938년 시작되어 80년 넘게 진행되어 온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 자료에서도
건강과 행복에 중요한 요소로 사람과의 관계가 반복해서 강조된다.
결국 사람을 지탱하는 것은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느냐만이 아니라,
누구와 연결되어 살아가느냐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이다.
집은 넓힐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평수는 다른 방법으로 넓혀야 한다.
내가 가진 것을 세어보는 것이다.
아직 건가아게 걸을 수 있는 두 다리,
늦은 밤 안부를 물어주는 가족, 밥 한 끼를 나눌 친구, 아무 이유 없이 웃을 수 있는 순간들.
그리고 가끔은 남의 삶에서 눈을 떼는 연습도 필요하다.
남의 집을 보며 내 집을 평가하지 않고,
남의 인생을 보며 내 인생의 점수를 매기지 않는 것이다.
집들이를 다녀온 며칠 뒤, 나는 다시 우리 집 거실에 앉았다.
예전과 똑같은 소파이고, 예전과 똑같은 벽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집에서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아이와 웃었던 날도 있었고, 가족 때문에 속상했던 날도 있었다.
아픈 날에는 이곳에서 쉬었고, 좋은 일이 있던 날에는 이곳에서 함께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의 진짜 평수는 둘러싸인 벽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사랑과 기억과 이야기가 들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었다.
남의 집 평수를 부러워하는 동안 우리는 자꾸 내 마음의 방을 줄인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면 어떨까.
남의 집이 몇 평인지 묻기 전에 내 마음에는 몇 평의 여유가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다.
진짜 부자는 더 큰 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작은 것들을 작게 여기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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