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가 끝났는데도 한마디가 귓속에 남았다.
“그 정도는 미리 챙기셨어야죠.”
틀린 지적은 아니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 앞에서 들으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며칠 동안 애쓴 일은 사라지고, 놓친 것 하나가 나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괜찮은 척 자료를 정리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사직서를 세 장쯤 쓰고 있었다.
물론 제출할 용기는 없었다. 카드 결제일은 자존심보다 정확한 법이다.
퇴근길에는 사람 얼굴도 보기 싫었다.
지하철에서 어깨를 부딪친 사람에게 괜히 눈길이 날카로워졌다.
세상이 나를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이 들면,
나도 세상을 함부로 보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역 앞 김밥집에 들어갔다.
주문하고 앉아 있는데 주인이 작은 국그릇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많이 피곤해 보이네요. 따뜻할 때 드세요.”
별말이 아니었다. 내 사정을 아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국그릇을 감싸 쥐는 순간,
하루 종일 힘주고 있던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누군가에게는 부족한 부장이었지만,
여기서는 따뜻한 국물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가게 라디오에서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흘러나왔다.
예전에는 여럿이 모이면 목청껏 따라 부르던 노래였다.
그날은 제목이 조금 낯설게 들렸다.
사람 때문에 이렇게 속이 상한 날에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
정지원의 시에 안치환이 곡을 붙인 이 노래를, 나는 그날 다시 생각했다.
사람이 늘 착하고 다정해서 아름답다는 뜻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사람은 질투하고, 실수하고, 가까운 이에게 모진 말도 한다.
나 역시 아침에는 상처받은 사람이었다가
저녁에는 가족에게 상처 주는 사람이 되곤 한다.
그래도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고단함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
지나쳐도 되는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식기 전에 먹으라고 국그릇을 밀어줄 수 있다.
그 작은 행동이 마음속에 굳게 내려앉은 생각 하나를 흔든다.
세상에는 나를 몰아세우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름다움을 얼굴이나 성과로만 따지면 우리는 늘 평가받는 자리에 서게 된다.
그러나 지친 이를 잠깐 쉬게 하는 행동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으면,
평범한 하루에 보이는 것이 많아진다.
무거운 문을 잡아주는 손, 말없이 일을 나누는 동료,
대답이 늦어도 기다려주는 가족이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다음 날 다시 밖으로 나간다.
국을 다 먹고 휴대전화를 보니 후배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부장님, 아까 자료 정리해주신 것 덕분에 마무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후에 들은 말만 되풀이하느라 그 메시지를 놓치고 있었다.
상처 하나가 하루 전체를 차지하도록 내버려둔 셈이다.
고마운 마음까지 들어올 자리를 빼앗긴 것이 조금 아까웠다.
다음 날, 후배가 업무를 놓쳤다며 난처한 얼굴로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그걸 왜 이제야…”라는 말이 올라왔다.
어제의 국그릇이 떠올라 입을 멈추었다.
“일단 앉아봐. 어디부터 같이 보면 될까?”
후배가 의자를 당겼다. 문제가 금방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혼자 서서 설명할 때보다 목소리가 덜 떨리는 게 느껴졌다.
어제 내 손을 데워주었던 국그릇의 온기가
오늘은 이 작은 의자 하나로 이어진 것 같았다.
점심 무렵 김밥집 앞을 지나며 주인에게 먼저 인사했다.
어제 국이 참 따뜻했다고 말했다.
주인은 웃으며 오늘도 밥 거르지 말라고 했다.
꽃 한 송이 없는 가게 앞에서, 나는 잠깐 발걸음을 늦추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사람의 온기로 모두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 온기 덕분에 마음의 문을 조금 열고,
누군가를 다시 맞아들일 수는 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다시 흥얼거리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후배가 아직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옆에 의자를 당겨 앉았다.
오늘은 내가 받은 온기를 조금 더 건네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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