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찾는다.
알람을 끄기 위해서가 아니다. 주식 앱부터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세상을 다 가진 듯 부풀어 오르던 마음이, 모니터상의 마이너스 기호 앞에서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는다.
수익률 창에 찍힌 숫자 몇 개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롤로코스터 감정,
내가 이토록 가벼운 존재였나, 자책하면서도 매일 아침 그 챗바퀴에 기꺼이 몸을 싣는 것이 오늘을 사는 나의 연약한 일상이다.
요즘 지하철이나 식당 어딜 가나 주식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본다.
남보다 뒤처질세라 ‘영끌’과 ‘빚투’를 마다하지 않으며
모니터의 붉은 선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누군가의 굽은 등을 볼 때면 가슴 한 켠이 애잔해진다.
우리는 왜 이토록 작은 숫자와 외부 환경의 변화에 격렬하게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인까?
그것은 삶을 지탱하는 내면의 닻을 깊은 곳에 내리지 못하고,
우리 존재의 가치를 오직 눈에 보이는 ‘물질’과 ‘숫자’에만 매달아 두었기 때문이다.
주식 창 하나에 천국과 지옥이 벌갈아 열린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제와 오늘의 나는 똑같은 사람이다.
밥도 똑같이 먹고, 출근도 똑같이 하고, 가족도 그래도이다.
그런데 계좌 숫자 몇 개만 바뀌었다고 기분은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주식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녀의 성적표 하나, 승진 소식 하나, 통장 잔고 하나, 남의 집 아파트 가격 하나에도 마음이 출렁인다.
숫자는 가만히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이다.
특히, 손실은 이익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파란불을 보면 머리보다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주식이 나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스토아학파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인간을 괴롭히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했다.
숫자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숫자가 내 삶의 전부라고 믿는 우리의 불안함이 자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돈은 중요하다. 노후도 중요하고 가족의 생활도 중요하다.
그러니 주식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돈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돈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이야기이다.
불교에서도 재산 자체를 악으로 보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마음이다.
물질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영원한 행복을 보장한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가진 것을 지키느라 오히려 그것에 붙잡히게 된다.
주식 창을 닫고 가끔 다른 창을 열어보자.
오늘 내가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한 번 했는지, 누군가의 고생을 알아봐 주었는지,
내가 가진 것에 감사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주식 계좌의 수익률은 매일 바뀐다.
그러나 사람의 본심은 그렇게 쉽게 바뀌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오늘도 주식 창에 파란불이 켜질 수 있다.
그러나 내 심장까지 파란불이 될 필요는 없다.
돈은 오르내릴 수 있지만, 내가 지켜야 할 사람에 대한 마음과
삶의 가치까지 오르내릴 필요는 없다.
어쩌면 인생의 진짜 수익률은 계좌에 찍힌 숫자가 아니라
무엇을 잃지 않고 살아왔는가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주식 창을 조금 일찍 닫아도 좋다.
그리고 내 마음의 창을 한번 열어볼 일이다.
거기에는 아직 파란불보다 오래가는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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