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를 마시다가 자리에 없는 동료 이야기가 나왔다.
“그 사람은 꼭 자기 편한 일만 하더라.”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를 쳤다.
얼마 전 서운했던 일까지 보태니 이야기가 제법 풍성해졌다.
누군가 웃었고, 나도 웃었다.
공통의 불만이 생기자 우리 사이가 갑자기 가까워진 것 같았다.
커피값만 내고 소속감까지 얻은 셈이었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니 입안이 썼다.
커피에는 시럽을 두 번이나 넣었는데, 이 쓴맛은 어디서 온 것일까.
복도에서 그 동료를 만났다.
“부장님, 지난번 자료 덕분에 잘 마무리했습니다.”
그는 웃으며 인사했다.
나도 웃었지만 눈을 오래 마주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이야기하던 사람과
지금 내 앞에 선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새삼 불편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나눈 이야기에 완전한 거짓말은 없었다.
그는 일을 미루기도 했고, 나를 서운하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빼놓은 것도 많았다.
바쁜 날 대신 전화를 받아준 일, 늦게까지 자료를 정리하던 모습이었다.
나는 그 사람의 일부만 골라놓고, 그것으로 전체를 설명했다.
뒷담화가 쉬운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당사자가 없으니 내 설명을 고칠 사람이 없다.
나는 상처받은 사람이 되고, 상대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 된다.
이야기 속 배역을 내가 모두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남을 낮추는 동안 잠깐은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기분이 지나가면 마음에 다른 습관이 남는다.
사람을 만날 때 좋은 점보다 흠부터 찾고, 친절을 받아도 숨은 뜻을 의심한다.
내가 내보낸 말이 결국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되는 것이다.
철학자 시몬 베유는 타인을 향한 주의를 윤리의 중요한 태도로 보았다.
나는 그 생각을,
내 판단으로 상대를 가득 채우기 전에
실제로 그를 바라볼 자리를 남겨두는 일로 받아들인다.
내가 서운했던 사실과 그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는 같은 질문이 아니다.
물론 잘못을 말해야 할 때는 있다.
부당한 일을 겪었다면 도움을 구하고, 업무의 문제라면 함께 해결해야 한다.
다만 문제를 고치려는 대화가
어느 순간 사람을 깎아내리는 즐거움으로 바뀌지는 않았는지 살필 일이다.
그날 나는 해결책보다 웃음거리를 더 열심히 찾았다.
저녁에 잠깐 눈을 감았다.
‘그 사람도 오늘을 잘 견디게 해주세요. 나도 함부로 말하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라고 부르기에는 짧았지만,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상대가 달라지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보지 못한 사정이 있을 자리를 남겨두는 것이었다.
다음 날 커피 자리에서 같은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어제 보탠 말을 바로잡았다.
“내가 어제 너무 단정해서 말했어. 그 친구가 도와준 일도 있었는데.”
분위기가 잠깐 멈췄다. 어색했지만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후에는 그 동료에게 미뤄진 업무를 함께 확인하자고 말했다.
서운한 일은 당사자와 풀고, 고마운 일은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다정한 관계를 만드는 일은 이런 작은 수고를 요구하는 모양이다.
자리에 없는 사람에게도 얼굴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수고이다.
다음 커피 자리에서는 누군가를 웃음거리로 삼기보다,
그가 돌아와 앉을 자리까지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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