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책 수선소』 제2화 새로 살 수 없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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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맡은 일은 선반의 먼지를 닦고 책을 옮기는 것이었다.

해수는 책등의 높이를 맞추고 큰 책을 아래쪽에 모았다. 제법 보기 좋아진 선반 앞에서 곽 노인이 얇은 책 세 권을 꺼냈다.

“이건 이쪽.”

“크기대로 꽂았는데요.”

“이쪽은 맡긴 책. 저쪽은 찾아갈 책.”

해수는 선반 아래의 종이를 그제야 보았다.

“말씀을 먼저 해주셨으면…….”

노인은 대답하지 않고 책 한 권을 더 옮겼다. 모르면 물으면 된다는 말을 들은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책을 다시 옮기는데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점심 먹었어?

두 시가 가까웠다. 해수는 문장을 썼다 지우다 답장을 보냈다.

동네 책 고치는 가게에서 정리하는 일 시작했어. 오늘부터.

전화가 바로 걸려왔다.

“갑자기?”

“걷다가 사람 구한다는 공고가 있길래.”

“힘쓰는 일이야?”

“책 조금 옮기는 거야.”

해수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놓았다.

“아침에는 내가 좀…….”

“응?”

“프라이팬 말이야.”

잠깐의 침묵 뒤에 아내가 말했다.

“그거 잘 씻어놨더라. 저녁에 얘기해. 점심부터 먹고.”

통화를 마치자 곽 노인이 도시락을 꺼내고 있었다. 밥 위에는 김과 달걀말이가 놓여 있었다. 그는 빈 그릇에 밥을 절반쯤 덜었다.

“나가면 문 닫아야 하니까 여기서 먹어.”

해수는 괜찮다고 하려다 그릇을 받았다. 작업대 구석에 마주 앉자 노인이 마스크를 벗었다. 입가에 깊은 주름이 있었다.

“요즘도 고쳐 읽는 사람이 있네요. 새로 사는 게 더 쌀 수도 있을 텐데.”

노인은 토끼가 그려진 동화책을 가리켰다.

“저건 새로 못 사.”

“절판된 겁니까?”

“그런 것도 있고.”

첫 장 귀퉁이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있었다.

엄마, 내일도 읽어줘.

아래에는 아이 이름과 오래전 날짜가 적혀 있었다.

“지금은 그 애가 자기 애한테 읽어준대.”

해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가 그릇을 당겼다. 식은 밥이었지만 오래 씹으니 단맛이 났다.

*세 시를 넘기면서 비가 내렸다.

빈 상자를 들이는데 유리문 밖으로 젖은 운동화가 보였다. 후드를 쓴 소년의 턱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책 사는 데예요?”

“고치는 곳인데.”

“비 좀 피하면 안 돼요?”

“들어와.”

곽 노인이 말했다. 소년은 배낭을 멘 채 구석으로 들어섰다. 해수는 번지는 물을 내려다보며 걸레를 옮겼다.

“거기 말고, 이쪽에 서면—”

“알았어요.”

소년은 말을 끊고 움직였다. 노인이 건넨 수건도 고맙다는 말 없이 받았다. 해수는 무슨 말을 하려다 선반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 종이 울렸다. 소년이 나가고 있었다.

점퍼 안쪽이 네모나게 불룩했고, 작업대 끝의 동화책이 보이지 않았다.

“학생. 그 책, 두고 가야지.”

“무슨 책요.”

“옷 안에 든 거.”

소년은 해수만 바라보며 책을 꺼냈다. 젖은 손가락이 토끼 그림의 표지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건 손님이 맡긴 책이야. 여기 놔.”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해수는 한 걸음 다가갔다.

“젖으니까 빨리 줘.”

손을 뻗자 소년이 팔을 당겼다. 해수의 손끝이 표지에 걸렸고, 펼쳐진 속장이 젖은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그가 책을 자기 쪽으로 당기는 순간 종이가 찢어졌다.

해수는 손을 놓았다. 토끼 발밑에서 페이지 가장자리까지 긴 자국이 생겼다.

“그러게 내놓으라니까.”

“아저씨가 잡아당겼잖아요.”

“네가 안 가져갔으면—”

“둘 다 손 떼.”

곽 노인이 책 아래에 손바닥을 받쳤다. 당기지 않고 기다리자 소년의 손가락이 천천히 펴졌다.

“고칠 수 있습니까?”

“말라봐야 알아.”

소년이 문손잡이를 잡았다.

“어디 가. 부모님 연락처 있어?”

“왜요.”

“이런 일이 있었으면 어른이 알아야—”

“아저씨가 뭔데요.”

해수는 입을 다물었다. 이 가게에 들어온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

“찢어졌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야.”

소년은 주머니를 뒤져 동전 몇 개와 젖은 천 원짜리를 상자 위에 놓았다.

“이거면 돼요?”

돈을 놓은 손이 상자 위에 남아 있었다. 곽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그건 넣어.”

“그럼 얼마인데요.”

“아직 몰라. 지금 말하면 틀려.”

해수는 소년과 문 사이에 있던 의자를 당겼다.

“일단 앉아. 밖에 비 오니까.”

소년은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옷자락에서 물이 떨어졌지만 해수는 이번에는 걸레를 가져오지 않았다.

(3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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