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그만두게 되었다는 쪽에 가까웠다.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곧바로 대책을 꺼냈다.
자격증은 있는지, 아는 사람에게 연락해봤는지,
요즘 어떤 일이 유망한지 떠들었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그냥 얼굴 보려고 나온 거야.”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두 사람도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순간에 만난다.
음악 프로듀서 댄은 일터에서 밀려나고 가족과도 멀어져 있다.
싱어송라이터 그레타는 연인의 배신으로 상처받았다.
한때 믿었던 관계와 일이 흔들리니, 자신마저 시시해 보이는 날들이다.
댄은 작은 술집에서 그레타의 노래를 듣는다.
다른 이들이 흘려듣는 연주에서 그는 아직 들리지 않는 음악을 상상한다.
기타와 목소리 곁으로 여러 악기의 소리가 겹쳐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레타의 현실은 그대로인데, 누군가의 귀에는 가능성이 들린다.
나는 그 장면에서 친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퇴직이라는 소식을 듣는 동안
내가 본 것은 없어진 자리와 앞으로의 위험뿐이었다.
그 사람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솜씨와 성실함은 잠시 잊고 있었다.
사람을 돕고 싶을 때 우리는 자주 부족한 것부터 찾는다.
그러나 무엇을 잃었는지 묻는 만큼 무엇이 남아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실패는 한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인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되고 만다.
실직자, 실패한 사업가, 뒤처진 사람.
그런 이름 아래에서는 오래 쌓아온 능력도 잘 보이지 않는다.
댄과 그레타는 대단한 재기의 조건을 기다리지 않는다.
스튜디오 대신 뉴욕의 거리와 골목, 옥상에서 음악을 녹음한다.
자동차 소리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연주 사이로 들어온다.
완벽하게 정돈되지 않은 장소가 그들의 음악을 품는다.
그 풍경을 보며 내 삶의 잡음도 생각했다.
통장 걱정, 가족에게 한 말의 후회, 예전 같지 않은 몸, 늦었다는 조급함이다.
나는 그것들이 모두 사라져야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영화 속 사람들은 어수선한 오늘 한복판에 악기를 놓는다.
시작할 자리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댄 역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
그레타의 노래를 알아본 귀가 그를 다시 음악으로 데려간다.
서로를 일으키는 관계에는 늘 강한 사람과 늘 약한 사람이 정해져 있지 않다.
오늘 손을 내민 사람이 내일은 그 손에 기대기도 한다.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동안 두 사람은 자기 삶을 조금씩 되찾는다.
며칠 뒤 친구에게 연락했다.
이번에는 일자리 정보를 보내는 대신,
예전에 그가 찍어준 가족사진을 꺼냈다.
“너 사진 참 잘 찍었잖아. 주말에 같이 걸으며 찍어볼래?”
친구는 장비도 오래됐고 요즘은 감도 떨어졌다고 했다.
나도 글이 잘 안 써진다고 답했다.
그러면 사진 몇 장에 짧은 글이나 붙여보자고 했다.
대단한 계획은 아니었다. 돈이 될지도 몰랐다.
주말에 우리는 동네 시장을 걸었다.
친구가 카메라를 들었고 나는 공책을 꺼냈다.
첫 사진에는 지나가던 사람의 팔이 걸렸다.
친구가 웃으며 다시 찍었다.
그 웃음이 반가워 나는 첫 문장을 적었다.
우리에게는 아직 함께 해볼 일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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