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휴대전화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십수 년 전의 나였다.
지금보다 머리숱도 많고, 배도 덜 나왔으며, 무엇보다 표정에 자신감이 넘쳤다.
사진을 한참 바라보다가 혼잣말이 나왔다.
“저때는 참 젊었는데.”
그러고는 곧바로 후회가 따라왔다.
그때 조금 더 공부했더라면, 그 직장을 옮겼더라면, 돈을 좀 더 모았더라면,
아이들과 시간을 더 보냈더라면….
과거를 돌아보면 잘한 일보다 못한 일이 먼저 떠오른다.
내 인생의 기억력은 참 편파적이다.
칭찬받은 일은 금방 잊어버리면서, 십 년 전 회식 자리에서 했던 실언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참 뒤척이다가 유튜브에서 위로가 되는 노래를 검색했다.
이적의 〈걱정말아요 그대〉
2015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OST로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이다.
원곡은 전인권이 만들고 불렀고,
이적의 목소리로 다시 불리면서 또 다른 울림을 전했다.
이 노래가 특별한 것은 무조건 괜찮아질 것이라고 장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지나간 일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실패한 일에도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에게 상처 준 말에도 의미가 있을까.
돌이킬 수 없는 선택까지 아름답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내 인생의 후회까지 전부 면죄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이해되는 것이 있다.
지나간 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때의 잘못을 정당화하는 일이 아니라,
그 잘못을 안고 살아온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젊은 시절에는 선택의 갈림길이 참 많았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고민했고, 선택한 뒤에도 다른 길을 기웃거렸다.
지금 돌아보면 참 어리석은 결정도 있었고, 누군가에게 미안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지금의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과거의 나를 평가하는 것은 어쩌면 조금 불공평한 일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인간을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로 바라보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배우고, 흔들리고, 생각을 고쳐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부족했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부족함을 지나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속 쌍문동 사람들도 그랬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자식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던 부모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툴렀던 아버지들,
작은 일에도 세상이 무너진 듯 울고 웃던 청춘들.
그들의 삶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로를 걱정하고, 때로는 상처 주고, 다시 화해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1988년이라는 특정한 시간이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적의 노래가 가슴에 와닿는 이유도 비슷하다.
이적은 당시 지나온 세월을 후회하는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누군가에게 위로받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내가 나 자신을 위로할 차례인지도 모른다.
그때 조금 더 잘하지 못했다고, 더 좋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고,
가족에게 충분히 다정하지 못했다고 평생 자신을 책망하며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잘못한 일이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할 일이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반성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지, 평생 자신을 벌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후회가 과거를 바꾸지는 못하지만, 후회를 대하는 태도는 남은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사진첩 속 젊은 나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때는 몰랐다.
그토록 불안하고 서툴렀던 시간이 훗날 이렇게 그리운 시절이 될 줄은.
아마 십 년쯤 뒤에는 지금의 나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그때도 참 괜찮은 나이였는데.’
그러니 오늘의 나를 너무 구박하지 말아야겠다.
젊은 날의 실수도, 중년의 후회도, 뜻대로 되지 않았던 수많은 날도
모두 내가 살아온 인생의 일부이다.
인생은 잘못 쓴 문장을 모두 지워야 완성되는 원고가 아니다.
지우고 싶은 문장까지 남아 있기에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밤, 오래된 사진을 다시 꺼내본다면 그 시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 참 많이 고민했지. 실수도 많았고, 속상한 일도 많았을 거야.”
“그래도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지나간 날을 너무 오래 미워하지 말자.
그 시절의 나도 오늘의 나처럼,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애쓰던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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