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늦게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부대끼며 쌓인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글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문장 하나를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때 방문 너머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막내아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했다.
요즘 아이들이 즐겨 듣는 노래는 아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멈췄다.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였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1991년에 발표된 노래를 2026년의 아들이 부르고 있었다.
내가 젊은 시절 가슴으로 들었던 노래를, 아들이 알고 있었다.
김현식은 1990년 서른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 발표된 유작 앨범에 실린 〈내 사랑 내 곁에〉,
그의 거칠고 허스키한 목소리에는
다른 가수에게서 쉽게 느끼기 어려운 애절함이 있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정확한 음정일까, 화려한 고음일까.
김현식의 노래를 들으면 그런 기준들이 조금 무색해진다.
그의 목소리는 때로 갈라지고 거칠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람의 마음에 깊숙이 들어온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젊을 때는 매끄러운 삶을 꿈꿨다.
좋은 직장, 안정된 가정, 인정받는 사람.
그런데 쉰 살을 넘기고 보니 인생은 생각보다 음정이 자주 흔들리는 노래였다.
열심히 살아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었고,
곁에 있던 사람이 멀어지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웃다가도 어느 날 밤에는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은 인간이 혼자 조용히 머무르는 일을 어려워한다고 보았다.
어쩌면 우리는 고독이 두려워 끊임없이 무언가에 몰두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음악은 조금 다르다.
외로움을 잊게 만들기보다,
그 외로움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인정하게 한다.
김현식의 노래가 그렇다.
괜찮아질 것이라고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다.
힘내라고 등을 떠밀지도 않는다.
그저 상처 입은 목소리로 누군가의 곁에 머물고 싶다는 간절함을 전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위로란 반드시 밝고 희망찬 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때로는 누군가 자신의 아픔을 숨기지 않고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법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막내아들이었다.
아들은 김현식이 살았던 시대를 모른다.
카세트테이프를 연필로 감아본 적도 없을 것이고,
좋아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 라디오 앞에서 기다려본 경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마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
혼자 남겨지는 것이 서러운 마음에는 세대 구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세대 차이를 이야기한다.
듣는 음악도 다르고 사용하는 말도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날 밤 나는 아들의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굳이 방문을 열어 감상을 말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그 노래가 어떤 의미인지 캐묻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오래전 좋아했던 노래가 아들의 하루에도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고마웠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다.
부모도 자식도, 친구도 연인도 영원히 같은 자리에 머물 수는 없다.
그러나 함께 나누었던 마음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현식은 떠났지만 그의 노래는 남았다.
그 노래를 듣던 청년은 어느새 아버지가 되었고,
이제 그 아버지의 아들이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쩌면 좋은 노래란 세월을 이기는 노래가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는 노래인지도 모른다.
그날 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방문 너머에서는 어느새 노랫소리가 잦아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아직 김현식의 목소리와 아들의 목소리가 함께 남아 있었다.
내 젊은 날의 외로움을 달래주던 노래가 이제 아들의 마음에도 머물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월이 그리 야속하지만은 않은 밤이었다.
언젠가 아들도 나처럼 나이를 먹고, 삶이 마음 같지 않은 밤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 이 노래를 다시 듣는다면 좋겠다.
그리고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그 노래를 부르던 어느 밤,
방문 너머에서 조용히 귀 기울이던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을.
어쩌면 사랑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누군가의 마음에 오래도록 곁을 내어주는 일.
그 밤, 아들의 노래 덕분에 나는 잠시 젊어졌고, 조금 덜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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