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탁에 생선 한 마리가 올라오면 어머니는 늘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나는 머리 쪽이 맛있더라.”
어릴 때는 그대로 믿었다. 어머니와 나의 취향이 참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살이 많은 몸통이 좋았고,
어머니는 발라 먹기 어려운 머리가 좋다니 얼마나 편리한 일인가.
어린 나는 가족의 평화를 위해 몸통을 성실하게 먹었다.
나이가 들어 아이들 접시에 좋은 반찬부터 놓아주다가 문득 손이 멈췄다.
어머니도 정말 머리 쪽이 더 맛있으셨을까.
그 오래된 말이 식탁 위에서 다시 들렸다.
함민복의 〈눈물은 왜 짠가〉를 읽으면 그런 의문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작품 속 아들은 형편이 어려워져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이모 댁에 모셔다드리는 길이다. 두 사람은 설렁탕집에 들른다.
어머니는 국이 짜다며 국물을 더 받아서는 아들의 그릇에 부어준다.
아들은 민망함과 서러움을 삼키고,
이를 알아챈 주인은 모자가 부담스럽지 않게 깍두기 한 접시를 더 놓아준다.
끝내 눈물을 흘린 아들은 땀을 닦는 듯 얼굴을 훔친다.
이 작품에는 마음을 설명하는 긴 연설이 없다.
국물을 기울이는 손, 모른 척하는 시선, 조용히 놓이는 접시가 있다.
그 작은 움직임들이 말을 대신한다.
나는 특히 아들의 민망함 앞에서 멈춘다.
사랑을 받으면서도 선뜻 기뻐할 수 없는 마음을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편히 모시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고,
그런 처지에서도 자신을 먹이려는 어머니가 고맙고,
그 고마움마저 아프게 느껴졌을 것이다.
가난은 지갑만 가볍게 하지 않는다.
식당에서 무언가를 더 부탁하는 목소리까지 작게 만든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며 어머니의 희생만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 그 사랑이 국물이 짜다는 핑계를 빌려야 했는지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 자리에 식당 주인이 있다.
그는 모자의 사정을 알아챘다고 드러내지 않는다.
도움을 주면서도 두 사람이 구경거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내게는 그 태도가 깊은 예의로 다가온다.
누군가를 돕는 일에는 필요한 것을 건네는 손뿐 아니라,
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눈길도 필요한 것이다.
나는 좋은 일을 하고 나면 은근히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설거지 한 번 해놓고 아내가 알아볼 때까지 부엌 주변을 서성인다.
이 정도면 선행이 아니라 작은 발표회이다.
깍두기를 놓고 조용히 돌아서는 주인 앞에서 조금 머쓱해진다.
작품을 덮고 어머니의 식탁을 생각했다.
배부르다던 말, 밖에서 먹고 왔다던 말,
좋은 반찬을 내 쪽으로 밀며 별것 아니라던 손짓을 떠올렸다.
그 말이 모두 희생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오늘은 얼마나 드시고 싶은지.
자식의 배를 채워주던 사람에게도
자기 몫의 입맛과 허기가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생각한 것이다.
다음 식사에는 생선 접시를 가운데 놓을 생각이다.
“엄마, 오늘은 어느 쪽 드실래?”
늘 듣던 대답이 돌아오더라도 조금 더 기다려보고 싶다.
고마움을 갚겠다는 대단한 결심보다,
어머니의 몫을 먼저 여쭙는 식탁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눈물은 왜 짠가.
사랑을 받은 순간보다 그 사랑을 뒤늦게 알아본 순간에, 우리는 자주 울게 되는 모양이다.
오늘은 그 눈물이 식기 전에 어머니와 밥을 먹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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