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을 돌리기까지, 아버지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영화 《택시운전사》가 묻는 먹고사는 일과 사람답게 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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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에서 후배가 억울한 지적을 받았다.

함께 맡은 일이었는데 책임은 후배에게 쏠렸다.

내가 설명하면 풀릴 일이었다. 그런데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괜히 나까지 불편해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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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끝난 뒤 후배에게 말했다.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위로는 제때 했는데, 필요한 말은 제때 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차이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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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의 만섭은 무슨 뜻을 품은 사람은 아니다.

1980년 5월, 서울에서 어린 딸을 홀로 키우는 택시기사에게 중요한 것은

밀린 집세와 하루의 벌이이다.

외국 기자를 광주까지 태워주면 큰돈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길을 나선다.

나는 그 마음이 낯설지 않았다.

가장의 머릿속에는 늘 작은 계산기가 켜져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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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광주에서 만섭은 자신이 듣고 믿었던 이야기와 다른 현실을 목격한다.

시민들이 군의 폭력에 쓰러지고, 위험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사람들이 있다.

그에게 밥과 잠자리를 내어주는 이들도 있다.

멀리서 들었을 때는 남의 일이던 것이,

얼굴을 마주한 뒤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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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섭은 두렵다.

집에 남은 딸이 생각나고, 살아 돌아가야 한다는 마음도 절박하다.

영화를 보며 나는 그가 돌아가려는 마음을 나무랄 수 없었다.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에게 자기 목숨은 자기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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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광주로 향하는 선택이 더 무겁게 다가왔다.

두려움이 사라져서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떠나온 사람들의 얼굴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영화는 용기를 타고난 성격보다,

보고 알아버린 고통 앞에서 내리는 선택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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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돕고 싶다가도 ‘내 사정도 어려운데’라는 말이 먼저 나올 때가 있다.

그 사정은 실제이다. 생계의 불안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다만 그것이 모든 외면을 정당화하는 말이 되면,

누군가의 어려움 앞에서 우리는 영영 움직일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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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비극을 사무실의 작은 갈등과 같은 무게로 놓을 수는 없다.

그래도 영화가 남긴 질문은 내 일상까지 따라왔다.

나는 가족을 지킨다는 이유로 무엇을 못 본 척하고 있는가.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살라고 말하면서,

정작 내 자리에서는 필요한 말 한마디를 아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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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섭 혼자만의 용기로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기자가 기록하고, 시민들이 서로를 돌보고, 택시기사들이 힘을 보탠다.

사람답게 사는 일은 혼자 모든 짐을 지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조금씩 맡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작은 행동이 다른 사람의 다음 행동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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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상사에게 업무 진행 과정을 다시 설명했다.

후배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며, 나도 확인을 놓쳤다고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굳었다.

말하고 나서도 속이 시원하기보다 걱정이 먼저 들었다.

용기 있는 사람 흉내를 내기에는 나는 여전히 소심한 부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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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에 후배가 조용히 고맙다고 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말 대신 함께 놓친 부분을 정리해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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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아내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어제 못 한 말을 오늘 했어.”

밥을 먹던 아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조금 덜 늦게 말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도 숟가락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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