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 노인의 대답에 지후가 안으로 들어왔다. 책에서 두 걸음쯤 떨어져 찢어진 페이지를 보았다.
“아직 그대로네요.”
“말리는 중이야.”
“언제 고쳐요?”
“마르면.”
해수는 소년의 운동화를 보았다. 어제보다 말랐고 풀렸던 끈도 묶여 있었다.
“아까 책 맡긴 분 다녀갔어.”
지후가 고개를 들었다.
“화냈어요?”
“속상해하셨지. 목요일까지 고쳐달라고.”
소년이 배낭끈을 고쳐 쥐었다.
“내가 잡아당긴 것도 말씀드렸어.”
“내가 찢은 거라고 안 했어요?”
“둘이 잡고 있었잖아.”
지후는 책으로 눈을 내렸다.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빈 채로 꺼냈다.
“저 뭐 하면 돼요?”
“뭘?”
“어제 그거요.”
책 쪽으로 턱을 움직였다. 해수는 선반을 가리키려다 노인을 보았다. 자신도 건드리면 안 되는 상자를 몰랐다.
“돈으로 계산할 일은 나중에 하고.”
“돈 없는데요.”
“알아.”
곽 노인이 접힌 상자들을 꺼냈다.
“끈 묶어 밖에 내놓을 거야. 손 다칠 수 있으니까 장갑 끼고.”
둘은 바닥에 앉아 상자를 포갰다. 해수가 끈을 짧게 잘라 다시 풀자 지후가 묶음을 눌렀다.
“이렇게 누르고 묶어요.”
“좀 잡고 있어봐.”
소년이 누르는 동안 해수가 매듭을 만들었다. 묶음을 골목에 내놓고 돌아오니 손바닥에 장갑 자국이 남았다.
“이제 책 봐도 돼요?”
“먼저 씻고.”
지후가 손을 씻고 돌아오자 노인이 마지막 장을 펼쳤다. 젖은 곳에서 떨어진 면이었다. 집 앞에 토끼가 서 있었고, 창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소년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해수도 뒤에서 그림을 보았다.
“다음 장은요?”
노인이 넘기자 그림 없이 글 몇 줄이 나왔다. 지후는 그것을 읽고 앞장을 보았다.
“엄마가 나오는 줄 알았는데.”
“네가 읽었던 책에는 나왔어?”
“잘 모르겠어요. 그랬던 것 같은데.”
곽 노인은 책을 덮지 않았다. 자전거 벨이 골목을 지나가는 동안 해수도 가만히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며 아내에게 전화했다.
“이제 가.”
“점심은 먹었어?”
“빵 먹었어.”
“국 남겨놨는데.”
“가서 먹을게.”
“근무 요일은 정했어?”
“월수금.”
“그럼 오늘은 쉬는 날이었네.”
해수는 가게를 돌아보았다. 유리문 너머로 지후의 등이 보였다.
“그러게. 오늘은 그냥 갔어.”

집에서 국을 데워 먹고 방으로 들어갔다. 서랍 아래에 몇 년째 쓰지 않은 공책이 있었다. 앞에는 회사 교육 내용이 남아 있었고 뒤는 비어 있었다.
그는 날짜를 적은 뒤 그림을 떠올리며 펜을 움직였다.
토끼는 불이 켜진 집 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림을 설명한 것뿐이었다. 지우려다 그대로 두었다. 다음 문장은 한참 뒤에 나왔다.
누가 문을 열어놓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어제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토끼가 돌아가는 집이라면 문을 연 사람이 누구인지 모를 이유가 없었다. 펜을 들었다 내려놓았다.
대학 때 선배에게 보여준 원고도 그렇게 고쳤다.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데서 설명한다는 말에 앞부분을 다시 썼고, 그러자 뒷부분이 싫어졌다.
결국 다시 보여주지 못했다.
아내가 밥을 먹으라고 불렀다. 식탁에는 김과 달걀찜이 있었다.
“어제 글을 조금 썼어.”
“글?”
“두 줄. 책에 나온 토끼 이야기.”
“동화 쓰는 거야?”
“아직은 모르겠어.”
아내는 달걀찜을 덜었다. 더 묻지 않아 다행이면서도 서운했다. 반가워할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밥을 먹고 일어나는데 아내가 물었다.
“보고 싶다고 하면 보여줄 거야?”
의자를 밀던 손이 멈췄다.
“나중에. 좀 더 쓰면.”
“알았어.”
해수는 아내에게서 빈 그릇을 받아 싱크대로 갔다. 방금 전까지 서운했던 마음이 민망해져 수도꼭지를 조금 세게 틀었다.

(6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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