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한 마리에 담긴 어머니의 세월-김창완 〈어머니와 고등어〉 자식을 키우고서야 들리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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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마트에서 고등어를 집어 들었다.

가격표를 보고 잠시 망설였다.

예전에는 서민 생선이라 불리던 고등어도

이제는 선뜻 장바구니에 넣기 부담스러운 물가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좋아하니 두 마리를 샀다.

집에 돌아와 고등어를 굽는데 기름이 튀고 비린내가 온 집안에 퍼졌다.

환풍기를 최대한 틀어도 소용없었다.

맛있는 고등어구이 한 접시를 만들려다 집 전체를 수산시장으로 만들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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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득 김창완의 〈어머니와 고등어〉가 생각났다.

1983년 발표된 김창완의 첫 솔로 앨범 『기타가 있는 수필』에 실린 노래이다.

소박한 통기타 반주에 특별한 기교도 없는 목소리.

그런데 이상하게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건드리는 노래이다.

노래는 한밤중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여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냉장고 한쪽에는 소금에 절여놓은 고등어가 있고,

방에서는 어머니의 작은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아들은 금세 알아차린다.

어머니가 내일 아침 자신에게 고등어를 구워주려고 미리 준비해 놓았다는 사실을.

그렇게 내일 먹을 고등어구이를 생각하며 좋아하다가,

노래의 마지막에는 뜻밖에도 엄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는 고백을 남긴다.

별다른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그런데 그 짧은 이야기 안에 어머니의 하루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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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노래에서 특히 어머니의 코 고는 소리가 마음에 남는다.

어릴 때는 몰랐다.

어머니가 잠든 모습이 얼마나 많은 노동 끝에 찾아온 휴식인지.

아침밥을 차리고, 빨래를 널고, 시장을 보고,

가족의 저녁을 준비하고 나서야 비로소 누울 수 있었던 사람이다.

아들에게는 냉장고 속 고등어가 내일 아침의 즐거움이지만,

어머니에게는 잠들기 전에 끝내야 했던 또 하나의 일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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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도 있다.

김창완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 노래가 실제 냉장고 속 고등어를 보고 만든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대학 시절 집안일로 손목이 아파 보호대까지 하면서도

빨래를 널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만들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정작 어머니가 노래를 듣고 서운해하셨다는 이야기이다.

아들에게 값싼 고등어만 먹인 어머니처럼 비칠까 마음이 쓰였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피식 웃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했는데,

어머니는 아들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지 못한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에는 도대체 만족이라는 것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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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아이 셋을 키우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먹이고 입히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제법 자랐는데도 걱정은 줄어들지 않는다.

학업, 진로, 취업, 건강까지.

아이들은 키가 자란 만큼 부모의 걱정은 덩달아 몸집을 키웠다.

부모의 마음은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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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 역시도 자라던 시절에는 부모님의 걱정을 참으로 귀찮아했다.

“밥은 먹었니?”

“늦게 다니지 마라.”

그 흔한 말이 잔소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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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는 마음,

어머니에게 고등어는 그런 사랑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기억하고, 내일 아침을 미리 준비하는 마음.

그 사랑에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부모의 사랑을 무조건적인 희생으로만 아름답게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어머니도 피곤했을 것이고, 때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식들은 이상하게도 어머니가 무엇을 해주었는지는 기억하면서,

그 일을 하느라 무엇을 포기했는지는 뒤늦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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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식탁에 고등어구이를 올렸다.

막내 아들이 생선 가시를 발라달라고 했다.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젓가락으로 살을 골라주었다.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 밥상 앞에서 내 고등어 가시를 발라주시던 어머니의 손이 떠올랐다.

그때는 고등어 살이 어디서 나오는지 몰랐다.

그저 내 밥그릇 위에 놓이는 것이 당연했다.

이제야 그 손이 보인다.

고등어 한 마리를 먹으며 자랐는데,

그 안에 담긴 어머니의 세월은 반평생이 지나서야 맛보게 된 것이다.

​

김창완의 노래는 어머니에게 미안해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았던 어린아이의 마음을 다시 불러낸다.

생각해보면 어머니도 무슨 보답을 바라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자식이 맛있게 먹고, 가끔 얼굴을 보여주고,

별일 없이 살아가는 것만으로 기뻐하셨다.

​

어머니는 이제 팔순이 넘으셨고, 치매 증상이 조금씩 더해가고 있다.

더 이상 밥상을 차리실 수 없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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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머니를 위해 장을 보고

없는 솜씨지만,

어머니에게 따뜻한 밥 한끼 차려드리는 아들로

조금씩 늙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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