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선소의 동화책 옆에 가느다란 종잇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곽 노인은 찢어진 가장자리를 맞추고 있었다. 일어난 섬유 사이로 토끼 발밑의 그림이 조금 어긋났다.
“오늘 붙이십니까?”
“이쪽부터.”
노인은 붓의 풀을 덜어내 얇은 종이에 발랐다. 해수는 숨을 줄이고 손끝을 보았다.
“바로 책을 덮어도 됩니까?”
“안 돼. 이거 한 장 줘.”
해수가 집어 건네자 노인이 물었다.
“한 장이야?”
두 장이 붙어 있었다. 모서리를 문질러 떼어냈다. 노인은 수선한 면 위에 조심스럽게 종이를 놓았다.
두 시가 넘어 지후가 왔다. 붙인 부분을 보고 몸을 숙였다.
“다 고쳐도 표시 나요?”
“응.”
소년은 더 묻지 않았다. 곽 노인이 빈 상자를 접으라고 하자 장갑을 꺼냈다. 해수도 곁에 앉았다. 테이프가 자꾸 끊어져 뜯고 있는데 지후가 모서리를 가리켰다.
“이쪽부터 해야 잘 떨어져요.”
알려준 곳을 잡으니 한 번에 떨어졌다.
“이런 일 해봤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잠깐.”
해수는 왜 그만뒀는지 묻고 싶었지만 다음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를 접은 뒤 해수는 가방의 공책을 꺼냈다. 아침에 넣었다가 다시 뺄까 망설였던 것이었다. 그래도 책상에 두고 나오면 저녁에 펼치지 않을 것 같았다.
찾아갈 책의 날짜를 적는 척 앉아 있는데 지후가 다가왔다. 곽 노인은 안쪽에서 통화 중이었다.
“그건 뭐예요?”
“공책.”
덮으려는 순간 소년이 첫 문장을 읽었다.
“토끼는 불이 켜진 집 앞에서…….”
“그냥 적어본 거야. 그림 보고.”
해수는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이상하다고 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덮을 생각이었다.
“왜 멈췄는데요?”
“집 앞이니까.”
“집 앞이면 들어가야죠.”
“잠깐 멈춘 거지.”
“왜요.”
해수는 펜을 집었다 놓았다.
“아직 거기까지는 안 썼어. 네가 보기엔 왜 멈췄을 것 같은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노인에게 들었던 말과 같아 짧게 웃었다.
“그렇지.”
공책을 덮으려는데 지후가 말했다.
“안에서 소리가 났을 수도 있죠.”
“무슨 소리?”
“그냥. 사람 소리.”
소년은 수건의 실밥을 비볐다. 해수는 싸우는 소리였느냐고 물으려다 그 손을 보았다.
“그럴 수도 있겠네.”
노인이 나오자 지후는 상자들을 옮기러 갔다. 해수는 펜 끝을 빈 줄에 댔다가 뗐다. 소년이 돌아보자 날짜를 적은 면으로 넘겼다.
네 시가 지나 지후의 전화가 울렸다. 소년은 밖에서 화면을 두드리다 들어와 배낭을 들었다.
“저 가요. 약속 있어서요.”
“상자는 다 했고?”
문 옆에는 접은 상자들이 쌓여 있었다. 해수도 알고 있었다.
“응. 다 했네.”
곽 노인이 지폐를 꺼냈다.
“오늘 한 시간 반 했어.”
“책값에서 빼면 안 돼요?”
“그건 아직 얘기 안 끝났고. 오늘 일한 건 오늘 줘.”
지후는 한동안 서 있다 돈을 접어 넣었다.
“내일 와도 돼요?”
“책 보러?”
“그냥요.”
“두 시 지나서.”
문으로 가는 소년에게 해수가 물었다.
“전화 되는 거야?”
“와이파이요.”
지후가 나간 뒤에도 해수는 문을 보았다.
“약속 있으면 가야지.”
노인의 말에 대꾸했다.
“가지 말라고 한 건 아닙니다.”
변명처럼 들렸다. 해수는 문 옆의 상자를 벽에 기대놓았다.
저녁에 아내가 공책을 보았다.
“토끼가 여기서 기다리는구나.”
“멈춘 건데.”
“그러네.”
“왜 멈췄는지 모르겠어.”
“당신이 쓴 건데?”
둘은 웃었다. 해수는 지후의 말을 전하려다 수선소 이야기를 했다. 지후가 상자를 능숙하게 접었고 노인은 품삯을 따로 주었다고.
“당신은 언제 받아?”
해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지급일을 묻지 않았다.
“다음에 물어볼게.”
소년이 언제 오는지는 신경 쓰면서 자기 지급일은 놓쳤다는 것이 우스웠다.
설거지 뒤에 공책을 펼쳤다. 주방의 서랍이 닫히고 텔레비전 소리가 작아졌다.
어릴 때 대문 앞에서 신발의 흙을 털던 일이 떠올랐다. 굳이 신발을 벗어 뒤집고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흙이 떨어진 뒤에도 한 번 더. 집 안의 기침 소리가 멎을 때까지였다.
해수는 물컵을 당겼다.
공책의 토끼는 지후가 보던 그림 속 토끼였는데 이제 자신이 문 앞에 세워놓은 것 같았다.
첫 문장은 지우지 않았다.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토끼는 발에 묻은 흙을 털며, 안에서 자기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렸다.

거실에서 아내가 불렀다.
“차 마실래?”
해수는 공책을 펼쳐둔 채 일어났다.
“응. 내가 끓일게.”
(7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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