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마지막인 줄 알아야 사랑할까 -드라마 《서른, 아홉》이 일깨워준, 내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할 시간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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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래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얼굴 한번 보자. 밥이나 먹게.”

“그래, 조만간 보자.”

우리 나이쯤 되면 이 대화는 거의 의례적인 인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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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이라는 말은 참 편리하다.

약속을 한 것 같으면서도 날짜를 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나도 친구도 바쁘다. 회사 일도 있고, 가족 일도 있고,

주말에는 밀린 집안일까지 기다리고 있다.

그러다 보면 한 달이 지나고, 계절이 바뀐다.

그렇게 미뤄둔 약속이 몇 개나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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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는 돈이 없어서 친구를 자주 만나지 못했다.

이제는 밥값 정도는 낼 수 있는데 시간이 없다고 한다.

참 묘한 인생이다. 돈과 시간이 서로 교대근무라도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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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방영된 드라마 《서른, 아홉》을 보면서 그 친구가 떠올랐다.

드라마에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한 세 친구 차미조, 정찬영, 장주희가 등장한다.

서로의 연애사를 훤히 알고, 잘못된 선택에는 잔소리도 하고,

별것 아닌 일로 티격태격하는 사이이다.

그런데 어느 날, 찬영이 췌장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흔을 앞둔 나이에 인생의 끝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세 친구의 시간은 달라진다.

미조는 계획했던 안식년을 뒤로 미루고 찬영의 곁에 머문다.

친구들은 남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보내기 위해 애쓴다.

함께 웃고, 밥을 먹고, 서로의 일상을 챙긴다.

그중에서도 마음에 남는 장면은 친구들이 순번까지 정해 찬영의 집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대단한 여행도 아니고, 특별한 이벤트도 아니다.

그저 친구의 집에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다.

그런데 그 평범한 일이 왜 그토록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일까.

아마 우리가 너무 쉽게 낭비하는 것이 바로 그런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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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상하게도 중요한 것을 중요하지 않게 취급하는 때가 있다.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는 즉시 받으면서 부모님의 전화는 나중에 걸겠다고 미룬다.

거래처와의 약속은 달력에 꼼꼼히 적으면서 친구와의 약속은 다음 달로 넘긴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가족과 저녁을 먹으면서도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아내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텔레비전 소리를 조금 줄이는 것으로

경청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산다고 말한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니다.

다만 가족을 위해 살아가는 일과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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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자각할 때

비로소 삶을 더욱 진지하게 마주할 수 있다고 보았다.

조금 어렵게 들리지만, 내 식으로 이해하면 이런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없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오늘 하루가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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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찬영의 시한부 선고는 세 친구에게 잔인한 사건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동시에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서로의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음을 앞두어야만 삶이 소중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덜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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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정말 소중했던 순간들은 대부분 평범한 장면 속에 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저녁밥, 아이들과 함께 웃었던 식탁,

친구와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던 골목길 같은 것들이다.

그때는 특별한 줄 몰랐다.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고, 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으며,

언제든 다시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는 생각보다 많은 ‘마지막’이 숨어 있다.

마지막인 줄 모르고 나눈 인사, 마지막인 줄 모르고 함께 먹은 식사,

마지막인 줄 모르고 걸었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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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서른, 아홉》이 슬픈 이유는 한 사람의 죽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 함께했던 한 사람의 빈자리를 느껴야 한다는 사실이

더 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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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를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받아들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매일 마지막 날처럼 비장하게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는 가족들이 먼저 부담스러워할지도 모른다.

그저 조금 덜 미루면 되는 것이다.

보고 싶은 친구에게 날짜를 정해 연락하고,

부모님의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어주고,

배우자와 차 한 잔 마시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

대단한 선물보다 그런 작은 행동이 더 오래 마음에 남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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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가 며칠 전 친구의 전화가 다시 생각났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연락해볼 생각이다.

“야, 조만간 말고 이번 주에 보자.”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따뜻한 약속은 먼 훗날의 행복을 기약하는 말이 아니라,

지금 당신을 만나러 가겠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직 서로에게 시간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오늘은 꽤 괜찮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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