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근길에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달이 참 예뻐.”
나는 버스 창밖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잠깐 조용해졌다. 별일은 없다는 대답을 듣고서야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았다.
아내는 달을 함께 보고 싶었던 것인데, 나는 통화 용건만 확인하려 한 것이다.
회사에서는 퇴근했지만 내 안의 부장은 아직 회의 중이었던 모양이다.
김용택의 시 제목은 그 순간의 내 대답을 돌아보게 한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나는 시를 읽을 때마다 ‘주시다니요’에 마음이 머문다.
달이 떴다는 사실보다, 그 달을 보고 나를 떠올렸다는 일이 놀랍고 고마운 것이다.
많은 사람 가운데 내 번호를 누른 손끝에 사랑이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요즘 내 전화에는 대부분 용건이 있다.
몇 시에 오는지, 무엇을 사야 하는지, 서류는 챙겼는지 묻는다.
가족끼리 주고받는 메시지를 모으면 작은 회사의 업무일지가 될 것 같다.
식구는 다정한 호칭인데 대화는 효율 중이다.
물론 그런 연락도 필요하다.
장을 보고 시간을 맞추는 일이 함께 사는 생활을 지탱한다.
다만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처리하지 않는 말이 점점 줄어들었다.
웃긴 일을 봤다는 말, 바람이 좋다는 말,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는 말이다.
젊었을 때는 달랐다.
별일 없이도 전화를 걸었고, 별말 없이도 오래 통화했다.
끊으라는 말을 먼저 하기가 아쉬웠다.
이제는 서로를 잘 안다는 이유로 설명을 줄이고,
바쁘다는 이유로 마음까지 요약한다.
익숙함이 때로는 다정함을 생략하는 핑계가 되는 것이다.
나는 가족을 위해 시간을 아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낀 시간으로 가족에게 무엇을 건넸는지는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일을 빨리 끝내고도 휴대폰을 더 들여다본 날이 많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용건 없는 전화에는 서두르면서,
모르는 사람의 영상은 끝까지 본 것이다.
아내가 예쁜 달을 발견한 순간에도 나는 바로 옆에 없었다.
그래도 전화 한 통이면 같은 하늘을 보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떨어져 있는 두 사람에게 잠깐 함께 머물 곳이 생긴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작은 연락도 소중하게 다가온다.
당장 해결해주는 것은 없어도, 상대가 내 하루 안에 있다는 사실을 전할 수 있다.
사랑은 큰 약속을 지키는 일이면서 이런 작은 순간을 나누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건물 사이로 달이 보였다.
아내에게 다시 전화했다.
“나도 봤어. 정말 예쁘네.”
그리고 아내가 어디에서 달을 보고 있는지 물었다.
서로 다른 자리에 서 있지만 같은 달을 보고 있다는 것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통화를 마치고 집으로 걸었다.
다음에 아름다운 것을 보면 사진부터 저장하기 전에 누가 생각나는지 살펴보고 싶다.
그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전화를 걸 이유는 충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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