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대전화 연락처를 정리하려다 매번 그만둔다.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이름도 선뜻 지우지 못한다.
언젠가 연락할 일이 있을지 모든다는 생각에서다.
정작 멀쩡히 통화할 수 있는 친구에게는 몇 달째 전화 한 통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내 인간관계는 저장 용량에 비해 사용 빈도가 낮은 편이다.
그런데 더는 전화를 걸 수 없는 번호를 남겨두는 마음 앞에서는
삭제 버튼이 전혀 다른 무게를 갖는다.
연결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름까지 지우기는 어려운 것이다.
《우리들의 발라드2》에서 열여섯 살 김소연이 부른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그런 마음으로 다시 듣게 된 노래이다.
그는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이 곡으로 위로받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으로 그 부재를 채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 나이에 어떻게 저런 감정을 알까 싶다가 멈칫했다.
나는 나이를 먹은 만큼 슬픔도 더 많이 안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살아온 햇수로 누군가의 그리움을 헤아릴 수는 없는 일이다.
1991년 발표된 원곡은 양희은이 노랫말을 쓰고 이병우가 곡을 붙였다.
기타와 목소리가 중심인 음악은 감정을 크게 부풀리지 않는다.
덕분에 듣는 사람은 가사의 망설임을 피하지 못한다.
다시 누군가를 만나 사랑할 수 있을지,
한 사람을 잃고도 예전처럼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지 묻게 되는 것이다.
이 노래에서 아픈 대목은 사랑이 끝나자 주변의 빛까지 달라진다는 감각이다.
길은 그대로이고 가게도 문을 열지만
함께 걷던 사람이 없으면 익숙한 풍경도 낯설어진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동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과 함께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는 모양이다.
또 하나 마음에 남는 것은, 노래가 이 슬픔을 서둘러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장담하지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달래지도 않는다.
사랑이 왜 이토록 쓸쓸한지 모르겠다는 마음을 끝까지 남겨둔다.
답을 주지 않는 노래가 오히려 오래 위로가 되는 까닭일 것이다.
연인의 이별을 떠올리게 하던 곡이 김소연의 목소리에서는 아버지의 부재로 들려왔다.
가사는 그대로인데 사랑의 대상이 넓어졌다.
같은 노래 안에 누군가는 옛 연인을, 누군가는 부모를,
누군가는 먼저 떠난 배우자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애도 연구서 『Continuing Bonds(지속되는 유대)』는
떠난 사람과의 관계가 기억 속에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 사람에게 배운 인사나 좋아하던 음식을 통해
함께했던 관계가 지금의 생활에도 남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렇다고 그리움이 언제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웃다가도 문득 울컥하는 날이 있고,
잘 지내는 자신이 괜히 미안한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에까지 어른답게 처신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부터도 작은 서운함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김소연이 조부모의 사랑을 이야기한 대목을 다시 생각한다.
새로운 사랑을 받는다고 먼저 떠난 사람의 자리가 지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가 보고 싶은 날에도 할머니 곁에서 웃을 수 있고,
웃고 난 뒤 다시 아버지가 보고 싶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 오래전 떠난 사람의 이야기를 꺼낸다면,
이제는 괜찮으냐는 질문부터 하지 않으려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 웃을 때는 어땠는지 들어보고 싶다.
없는 사람의 자리가 유난히 크게 보이는 날에는,
그 이름을 대화 속에 잠시 불러놓아도 좋겠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차 한 잔을 더 내오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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